매일신문

야고부-'눈치病'

옛날 중국 전한 7대 무제 시대의 일화다. 술자리에서 늙은 대장군 두영의 친구인 관부가 두영을 무시하는 한 고관을 나무랐다. 그러자 젊은 재상 전분이 고관을 두둔하고 나섰다. 관부가 전분에게 대들고 사죄를 하지 않아 결국 무제 앞에 불려오게 됐다. "경들의 판단으로는 어느 쪽이 잘못한 것 같소?"라고 무제가 물었다. 결국 지금의 검찰총장 격인 한안국마저 "양쪽 다 일리가 있사와 흑백을 가리기가 심히 어렵나이다"라고 했다. 실망한 무제가 자리를 뜨자 전분이 심하게 한안국을 힐난했다.

◎…당시 전분의 힐난은 "그대는 어찌해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처럼 망설였소. 시비곡절이 뻔한 일인데…"였다. 그래서 시류에 영합하면서 줏대 없이 눈치만 보는 걸 책망할 때 쓰여지는 '수서양단(首鼠兩端)'이라는 말이 생긴 모양이다. 이 고사를 새삼 떠올리는 건 요즘 세상에 눈치 안 보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궁금해서다.

◎…재벌 앞에만 서면 유난히 머뭇거리는 검찰의 수사 관행이 또 도마에 올랐다. 최근 한 자료에 따르면, 20대 재벌그룹을 상대로 제기된 고소·고발 사건 중 3개월 이상 처리되지 않고 있는 사건이 10건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재벌그룹 임직원들을 상대로 한 사건은 5년째 주임검사가 6명이 바뀌어도 여전히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있을 정도다.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6년간 검사장 10명 차장검사 7명, 부장검사 7명, 주임검사 8명이 거쳐가도록 지연 수사를 하다가 지난 9월에야 83명의 피고발인 중 81명을 무혐의 처리하기도 했다. 현행 형사소송법 257조에는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 검사는 사건이 접수된 지 3개월 이내에 수사를 마무리해서 공소 제기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그렇다면 아직 재벌 앞에서 검찰의 '눈치병'은 여전하다는 얘기이지 않은가.

◎…지금 세상은 패거리 짓기와 줄서기, 눈치보기로 어지러워지고 있으며, 그렇게 처신하지 않으면 '왕따'가 되기 십상이라는 신음 소리마저 들린다. '코드가 맞아야 통한다'는 비판은 접어두고라도, 권력과 금력 앞에서는 눈빛과 얼굴 표정에 따라 소신을 뒤집는 일이 다반사이지 않은가. '수서양단', '좌고우면(左雇右眄)' 않고, 시류를 뛰어넘으면서 줏대가 뚜렷했던 인물들이 더 우러러 보이는 세상이다.

이태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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