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은행원은 고달퍼…주말은 '학습의 날'

대구은행이 최근 행원들을 대상으로 '알기 쉬운 법률 강좌' 수강 신청을 받자 예상 인원의 2배인 600명이 몰렸다. 여·수신 법률 강의를 11월 첫째주 토, 일요일 오전 9시~오후 6시 한차례 계획했던 은행은 그 다음 주말에도 강의를 개설하기로 했다. 주말에 실시하는 공인신용분석사와 재무설계사 강좌에도 예상 인원의 2배가 몰렸다.

'주5일 근무제'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금융권 은행원들의 2박3일간 주말연휴가 여가보다 자기성장을 위한 학습투자로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주5일제가 여가시간을 늘려준 것 같지만 실제 은행원들 주말은 갈수록 빡빡해지고 고달파졌다.

외환 위기 이전 은행원들은 대리 승진시험을 앞두고 3, 4개월씩 여관이나 고시원에서 공부하던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공부할 일이 없었다. 또 일단 대리로 승진하면 업무만 성실히 하면 정년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금융시장 개방 이후 금융상품이 다양해지고 관련 제도 등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면서 제때에 이를 소화하지 못하면 낙오하기 십상이다. 구조조정이 상시로 일어나고 승진도 쉽잖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은행원 김모(40)씨는 평일 밤 8, 9시 퇴근하면 집에서 컴퓨터로 매일 금융 사이버교육을 1, 2시간 받는다. 사이버 연수가 끝나면 영어와 중국어 회화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며, 다른 사이버 연수를 신청하기도 한다. 주말에는 도서관에 나가 공부하거나 은행 내 주말 전일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은행에서 공부한다. 주5일근무제라고는 하지만 일요일 반나절을 가족과 보내는 데 할애하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 모임에도 잘 못 나가고, 아내 자식들과는 대화가 부족하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은행원들은 김씨의 생활이 평균적인 은행원 일상이며, 70~80% 이상이 항상 1, 2가지 이상의 재교육에 시간을 투자한다고 이야기한다. 재무설계사, 금융상담사, 투자상담사 등 20여개가 넘는 금융 관련 자격증을 최대한 많이 따야 승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투자상담 등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막히지 않으려면 연중 사이버 연수 수강, 한국금융연수원의 통신 교육 참여, 외국어 공부, 은행의 주말 전일 교육 참가 등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주5일 근무제로 인해 은행원들이 여가 시간을 많이 가질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지금의 금융 환경은 전문적인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기 때문에 살아 남으려면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지석기자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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