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다. 그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는…. 절기상으로는 지난 7일이 겨울의 길목으로 접어드는 입동(立冬)이었지만 달력상으론 아직 11월, 익을 대로 푹 익은 늦가을이다.
회색빛으로 찌든 도심의 하늘도 이맘때면 아른아른 높푸르다. 한발짝 교외로 나가보면 너무도 투명한 하늘빛에 눈이 시려진다. 예전보다는 많이 탁해졌지만 그래도 가히 세계 제1의 하늘빛이라 할만하다.
그 하늘 아래, 아침저녁 빛깔이 달라지는 나뭇잎들의 콘트라스트가 기가 막힐 정도다. 우중충한 사각의 시멘트 덩어리 아파트촌도 요술할멈이 지팡이를 댄 듯 화사해진다. 특히 해질녘 노오란 아르곤 가로등이 켜지면 은행나무 가로수 길은 함박눈이라도 내린 듯, 꿈길처럼 바뀐다.
자박자박 낙엽길을 밟는 사람들의 얼굴에 행복감이 어린다. 문득,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지는 낙엽들이, 발길에 차이는 이 가랑잎들이 모두 돈이라면?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이혼한 왕년의 탤런트 고현정이 1회당 출연료 2천만원이라는, 사상 최고의 몸값을 받고 연예계로 돌아온다고 한다. 20부 출연을 전제하면 4억이라는 계산. 하긴 이미 이영애(회당 1천300만원), 송혜교(1천만원) 등 여러 톱스타들의 출연료가 회당 1천만원을 넘어선 터라 연예계의 고액 출연료 소식에 이제 좀 무뎌질 만도 하지만 아직은 적응이 안된다. 솔직히 맥이 쑥 빠지고 허탈해진다. 기분이 영 꿀꿀해진다. 한 달 죽자고 뼈빠지게 일해도 월급 수십만원에 불과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수십년 경력 전문직 종사자들의 월급도 잘나가는 일부 연예인의 껌값정도에 불과한 판이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고학 여고생으로 방송사 퀴즈프로그램에서 골든벨을 울린 지관순양. 검정고시로 고교 진학 후 월 5만원의 근로장학금을 받기 위해 급식 우유를 배분해야 했던 그 소녀가 돈이 돈이 아닌 이 사회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나무의 발치마다 낙엽들이 수북수북 쌓이는 이 계절. 지금쯤 낭만파들은 낙엽타는 연기 속에서 그윽한 커피향을 음미하겠지. "자기가 꿈꿔온, 의미있는 일을 위해서라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한다"던 한창기 '뿌리깊은 나무' 대표의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뭉클하게 와닿는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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