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곳을 아십니까-남구 앞산 빨래터

'앞산 빨래터를 아십니까.'

남대구세무서 건너편 일명 '고압선 도로'를 따라 구 순환도로 방향으로 차를 타고 5분 가량 올라가면 도로가에 움푹 꺼진 작은 개울이 나온다.

사람 서너명이 둘러앉으면 비좁을 것 같은 작은 개울, 이곳이 '앞산 빨래터'로 유명세를 탄지도 50년 가까이나 됐다.

대명 11동과 맞붙은 대명6동 부근 앞산 끝자락에 있다.

"여기는 대구 '국보'로 해야 합니더. 우리 같은 늙은이들한테는 딱 좋은 놀이터라요."

지난 2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에서 남편, 자식 빨래를 치댔다는 예순 여덟의 김 못난이(?) 할머니. 그는 8일 오후에도 단짝 은모(57) 아주머니와 함께 빨래에 닭기름으로 만든 비누칠을 하며 연신 수다를 떨었다.

"얼마나 유명했는지 여관주인들이 택시나 손수레에 이불 빨래를 싣고 오기도 했었어요. 속 좋은 사람은 물을 떠먹기도 했다니까요." 빨래터 물로 장도 담았다며 자랑했다.

요즘은 산골짜기에서 굴러 내린 돌들이 내를 메워 좁아졌지만 그 시절만 해도 한 번에 10여명이 둘러앉을 수 있었다.

하루 한번 '물차'가 오던 물 귀한 70년대였다.

하지만 서로 자리를 양보할 만큼 빨래터 인심은 넉넉했다.

가끔 이곳에 발을 담그고 술을 마시는 동네 한량들이 욕을 먹었을 뿐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니 희한한 일이었다.

아무리 산에 가뭄이 들어도 개울물은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5대째 이곳에 산다는 민태술(64)씨가 기억하는 빨래터는 이 일대가 복개되기 전인 1960년대 전 모습이다.

빨래터는 '무당골', '가는골' 등 앞산자락에서 흐르는 지하수가 모이는 곳이었다.

그 물은 지금 복개된 골안마을(현 대명11동) 내리막으로 긴 개울을 형성해 서부정류장 뒤편으로 흘러 대명천과 만났다고 한다.

"초가집, 기와집이 40호는 됐으니까 작은 동네는 아니었지. 한 500m 되는 집 앞 개울가에는 빨래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어요." 나무통, 찌그러진 양철통, 옹기가 빨래통으로 등장했고 세제는 콩나무를 불로 때서 얻은 잿물이 전부였다.<

못 쓰는 다듬이돌을 가져다 빨래를 방망이질하기도 했다.

아이는 뒤편 냇가에 발가벗겨 담가놓았다

요즘에도 앞산 빨래터에는 하루 10여명이 잊지않고 찾는다.

남구청은 내년 말쯤 이 일대에 다목적 공원을 착공할 예정인데, 빨래터는 따로 보존할 계획이라고 한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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