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으스러진 '코리안 드림'…한 외국인 죽음

9일 낮 12시 수성구 만촌동 시립장묘사업소. 남구 이천동에서 빈집털이 연쇄방화범을 잡기 위해 검문활동을 벌이던 중 흉기에 찔려 숨진 고(故) 김상래 경사의 유해가 엄숙한 분위기 속에 화장되고 있었다.

같은 시각, 화장장 한 켠에는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이국 땅에서 한 맺힌 삶을 마감한 한 외국인 근로자가 한줌 재로 변하고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한번 세워보자고 고향인 베트남 하노이에서 경북 영천까지 찾아와 영세한 공장에 취직해 4년간 일하다 지난 달 29일 숨진 부 반 뚜엔(28)씨. 평소 친분을 나누던 베트남 출신 근로자 30여명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뚜엔씨의 마지막 길을 인도했다. 한 여성은 울다지쳐 쓰러졌고, 다른 동료들은 100원짜리 동전을 바닥에 뿌리며 부디 저승에서의 삶만은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행복을 찾아 한국 땅을 밟은 뚜엔씨의 인생 행로는 결코 순탄치 못했다. 그가 일했던 직장은 보트천막을 만드는 공장. 전체 직원이 7명 밖에 안되는 영세업체였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주말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너무 힘들었지만 고향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했다.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베트남인 동료 박 각 뚜연(29)씨는 "한달에 두번 밖에 못쉬고 계속 일을 하다보니 몸에 무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며 "결국 과로를 이기지 못해 죽은 것"이라고 했다.

유족 및 베트남 동료들은 지난 5일 근로복지공단 대구본부 남부지사에 '직장내 과로사로 인한 산재 신청'을 냈다.

하지만 현재 회사측은 뚜엔씨가 잠을 자다 숨졌기 때문에 '과로사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구외국인상담소 김경태 목사는 "영세한 기업의 사정상 과다한 노동을 요구할 수 밖에 없기에 이같은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 있다"며 "최근 9년 사이 경산과 진량, 영천 등지에서만 비슷한 사정으로 10여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숨졌지만 겨우 30% 정도만이 산재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

미처 꿈도 피워보지 못한 채 이국 땅에서 삶을 마감한 뚜엔씨. 지난 8일 베트남에서 비보를 듣고 달려온 형은 뚜엔씨의 유해를 수습해 10일 고향으로 떠났다. 한줌 재 속에 한 맺힌 꿈을 담은 채...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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