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무원 사회 왜 이러나..."

'어용''원천봉쇄'…전공노 파업 "기가 막힌다"

"공무원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습니까?"

요즘 대구시청에서 만나는 공무원들은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얘기가 나오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든다.

"투표를 막기 위해 구청에 경찰병력이 배치되고 공무원 조직에서 '어용'이니 '원천봉쇄', '찬반투표'같은 말이 쏟아져 나오니 기가 막힙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던 80년대도 아니고…."

전공노와 관련 없는 고위 공무원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대구시청 노조가 전공노와 노선을 달리한 탓인지 하위직 공무원들의 생각도 대개 비슷한 듯했다.

며칠 전 시청 관계자들이 최근 대구시내 구·군청에서 벌어지는 기막히는(?) 상황을 들려줬다.

"얼마 전 구청 벽에 붙여 놓은 현수막을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 총무과 직원들이 떼냈습니다. 이를 본 전공노 노조원들이 '저X 죽여라'고 외치며 따라가고, 총무과 직원들은 2, 3층으로 이리저리 달아나고…."

"국·과장이 하급직원들로부터 막말을 듣기도 하고, 계장들이 머리에 빨간띠를 매고 구호를 외쳐야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전공노에 찍히면 승진이고 뭐고 그만이니까요."

다소 과장이 섞여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구·군청 하위직 공무원들의 결의 수준을 보면 이런 사태를 경찰력에 기대 그냥 넘어갈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공무원 사회가 '혼돈의 시대'를 맞았다고 할 정도로 혼란스럽다.

10여년 전 기자가 구청을 처음 출입하면서 한 공무원에게서 들었던 얘기가 새삼 생각난다. "우리 국장님하고 목욕탕을 같이 한번 가야할 텐데…등이라도 밀어주며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 양순한(?) 공무원들을 '과격분자'로 바꿔 놓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단순히 단체행동권 보장 같은 표면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적인 환경이 급속도로 변해 가는데도 유독 공무원 사회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관료적인 조직문화, 직종 이기주의, 상명하달식 의사결정 구조, 고위층의 무사안일….

공무원들의 의식과 습성이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일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공무원 사회가 이를 혁파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결과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 문제점들이 한겹 두겹 쌓이면서 '전공노'라는 강력한 태풍을 몰고 온 것이다. '자업자득'이라는 외부의 평가가 결코 심한 말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공무원이 파업을 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불거진 문제점을 스스로 고치지 않는 것은 더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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