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정(色卽是情) 정즉시색(情卽是色). 아무리 성인군자라 하더라도 색(色)을 완전히 떠난 정(情)의 단계에는 오르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리 타락한 불한당이라 하나 정을 완전히 벗어난 색의 구렁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인간은 하루종일 정과 색 속에서 이쪽저쪽으로 이끌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쏠리면 탈이 나고 만다.
그래서 정과 색의 균형을 잘 이루며 사는 것이 인생행복의 비결이다.
"
천하제일의 기서(奇書), 세계 최고의 성애문학으로 평가받는 '금병매'를 새로운 시각으로 그린 소설 '반금련(潘金蓮)'에서 작가 조성기(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씨는 프롤로그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원작 '금병매'는 12세기 초 중국 송나라 시대를 무대로 반금련과 서문경의 사랑을 다룬 성애소설. 작가는 중국 4대 기서(삼국지·수호지·서유기·금병매) 중에서도 단연 세계적인 문학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금병매를 꼽는다.
16세기 무렵에 현대소설의 모든 구성요소를 두루 갖춘 금병매라는 소설이 동양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실은 '아Q정전'의 작가 루신(魯迅)도 금병매를 '동시대 소설 중 최고의 걸작'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중국성풍속사'의 저자 R H 반훌릭도 "전체적으로 볼 때 금병매는 세계문학에서 이런 종류의 소설 가운데 최고의 걸작에 속하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성윤리에 대한 유교적인 관점에서 외설 운운하면서 폄훼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단편적이 묘사만 가지고 외설이니 호색이니 하며 섣불리 단정을 짓지 말라는 것이다.
작가 조성기는 '금병매'는 그야말로 에로티즘 소설의 원형이요 금자탑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사드의 '소돔 120일' 같은 작품은 문학적 수준에 있어 금병매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이야기이다.
금병매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혹은 솔직하게 다루었다는 점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설정, 다시 말해 소설의 구성 그 자체가 대단한 흡인력이 있다.
금병매는 또한 음란과 뇌물과 음모와 살인으로 얼룩진 그 시대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문학이기도 하다.
그런데 금병매도 비슷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설명이 길어 늘어지는 등 고전소설이 지니고 있는 약점들이 있다.
작가는 그래서 좀더 현대적인 소설기법으로 압축해서 다시 쓴다면 이 시대 독자들의 호응도 얻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반금련'이라는 것이다.
"반금련 작업을 통해 '전족(纏足)의 사회사'를 소설로 형상화해 보려는 구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의 전족과 관련된 대목은 거의 대부분 관련 문헌에 기초했지요."
작가는 소위 '신첩 신고식' 등의 장면도 외설스런 상상이 아니라 '중국성풍속사'의 내용을 압축해 각색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 서문경과 반금련의 일생을 통해 인간이 음란한 정욕으로 인하여 얼마나 흉악한 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 그 죄의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서문경과 반금련의 인생을 반면교사로 삼아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함은 하늘의 명령과도 같건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오히려 그들은 진면교사(眞面敎師)로 삼으려 하니 언제쯤이면 인간들이 미망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오늘도 서문경과 반금련의 무리들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구나! 오호 통재로다!"
작가 조성기는 소설 반금련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그래서 반금련은 에로티즘을 다룬 소설이면서 동시에 총체적 사회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작가는 '반금련'이 성적 방종으로 점점 피폐화되어 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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