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장애인 대구 살기 힘들다

건물마다 '계단·문턱'…대구 '거대한 성벽'(?)

"12일 오후 대구시내 한 백화점 입구.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계단에 가로막혔다. 발만 살짝 들어올릴 수 있어도 쉬울 텐데. 보통 사람들은 계단이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지만 전동휠체어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나에게 계단은 거대한 성벽이다. 사람들은 싸늘한, 그리고 측은한 눈길로 바라본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백화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았다. 백화점 한 쪽의 화장실 출입문에도 문턱이 있다. 한 뼘 남짓한 문턱은 몸조차 제대로 가누기 힘든 나에겐 철책선이나 다름없다.

이어 찾아간 ㅎ극장. 영화를 보려고 했지만 맨 앞자리 아니면 뒷자리밖에 없단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너무 높이 붙어있고, 전동휠체어 하나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비좁다.

어렵게 찾아간 어느 종합쇼핑몰의 '장애인전용 화장실'은 온갖 청소도구와 자판기 물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장애인인권찾기단체 '밝은내일'의 회원이자 1급 중증 지체장애인인 정재용(29)씨는 같은 처지의 동료 10여명과 함께 12일 한나절 '대구지역 편의시설 실태체험'에 나섰다. 최근 2, 3년 새 증축 또는 리모델링한 백화점, 영화관, 시민공원 등 생활 편의시설에 지체장애인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선 길. 결과는 참담했다.

"모든 관계자들이 '건물이 오래돼서 그렇다',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앞으로 신경쓰겠다'는 변명만 되풀이할 뿐 지나고 나면 그 뿐입니다. 벌써 수 차례 항의서한과 공식문서를 보냈지만 달라진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더군요."

정씨는 시민공원과 관공서를 둘러보고는 아예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2·28기념공원 화장실은 잠금장치가 없어서 문을 닫을 수 없었고, 국채보상공원과 대구시청 장애인전용화장실은 휠체어 하나가 들어가자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시청 민원실로 들어가는 장애인용 길은 무용지물이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회전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들어가지도 못할 지경인 것.

지켜보고 있던 시청과 구청 관계자들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 같다"며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넓히도록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장애인들이 거리에 보이지 않는 것은 몸이 불편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도 햇볕을 쬐고 싶고, 남들처럼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커피숍에서 차도 마시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세상에 둘러쳐져 있는 벽이 너무 높습니다," 대구에는 주위의 도움이 없으면 아예 움직일 수조차 없고 전동휠체어를 이용해야만 나들이라도 할 수 있는 지체1급 중증장애인이 모두 2천185명이 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사진:12일 오후 대구시내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에 나선 한 장애인이 대구백화점 화장실 앞 계단 턱에 막히자 난감해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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