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만 봐도 요금계산 절로돼요."
농촌운행 버스 기자체험에 나서는 날, 가장 먼저 챙긴 물건은 선글라스였다. 1960년~1970년대 화물 트럭이나 버스 조수로 취직을 하면 가장 먼저 구입하는 것이 바로 선글라스 였다(폼 때문에 밤에도 끼고 잠을 잤다는 이야기도 있음)는데 기자도 흉내를 내 봤다.
점촌 시내버스 터미널은 비가 온 이후 갑자기 찾아든 추위 탓인지 새벽녘 대합실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새벽 5시30분, 터미널 2층 구내식당에는 1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박해복(49)씨 부부가 따뜻한 밥과 국을 끓여 놓은채 승객과 버스기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경여객 운전기사들 틈에 끼여 요기를 했다.
운전기사들은 각자 행선지로 출발하기 전에 차량상태를 점검했다. 시동을 걸어놓고 엔진에는 이상이 없는지, 막대가 긴 망치로 버스 타이어를 두드리며 요모조모 점검했다.
오전 6시. 대합실에 나와 있는 승객들은 기껏 10여명에 불과했다. 문경여객은 46대 버스가 두메산골 구석구석까지 330여곳을 누비고 1대당 하루 평균 300km 씩 운행하고 있다.
이날 하루 체험을 도와 주기로 한 신현복(53) 기사와 악수를 나눈 후 할머니 5명, 할아버지 3명 등 8명 손님들의 보따리를 받아 차 위에 올려 놓고 출발했다.
일과는 오전 7시15분까지 산북면 창구 가좌리까지 왕복하고, 오전 9시에 마성면 가은읍 벌바위까지 왕복후 정오쯤 들어와 오전운행을 끝내고 점심식사를 했다.
오전에 태운 손님들은 전날 점촌 자녀 집에 왔다가 하룻밤을 자고 되돌아 가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이들은 병원을 다녀 가거나 묘사때 쓸 차례음식을 준비하러 나온 노인들도 있었다.
낮 12시20분 산북면 석봉리와 김용리간 20km 구간때는 할머니 5명과 할아버지 2명 등 7명 승객을 태우고 출발했다.
뿔테로 된 투명 안대를 착용한 이정숙(77·산양면 존도리) 할머니에게 "눈이 많이 아프신가 봐요"하자 "한쪽 눈만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세상이 너무 환해져 좋지만 돈이 너무 들었다(26만원)"며 활짝 웃었다.
산양면까지 15분만에 도착해 승객을 한 사람이라도 더 실으려고 이곳저곳을 누볐지만 승객은 한 사람도 없었다.
석봉리에 도착했을때는 남아 있던 승객마저 내려 빈차가 됐다.
문경여객에서 운전을 한 지 12년째라는 신현복씨는 "과거 탄광이 번창하던 1970년~1980년대 석봉리는 수백가구나 됐지만 지금은 텅 빈 마을이 됐다"고 전했다.
석봉리에서는 이월재(66·여)씨 한 명만 버스에 올랐다. 상주 사벌 '배미기' 마을에서 시집 왔다는 이씨는 외동인 영감에게 시집와 8남매를 낳아 모두 출가시켰다고 했다.
이씨는 "지금은 버스가 다녀 교통이 좋지만 옛날엔 아이를 업고 친정까지 종일을 걸어 간 적도 있었다"며 남편은 경운기 사고로 다리를 다쳐 아프고 자신도 다리가 아파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버스는 석봉리에서 고찰 김용사(金龍寺)가 있는 김용리를 돌아 나왔는데 이 마을에서도 승객은 한명 뿐이었다.
기사 신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김용리는 아침 첫 버스의 경우 학생들을 모두 태울 수 없을 정도로 이용자가 많아 주민들은 다음 차편을 이용할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며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학생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농삿일도 제대로 못하는 노인들만 남아 버스가 오갈때마다 손을 흔들어 준다는 것.
신씨는 문경에서만 10여년 이상 버스 운전을 하다 보니까 "얼굴만 보면 버스요금 계산이 저절로 된다"고 했다.
이곳 손님들은 그렇지 않은데 가끔 외지인들은 요금을 속여 넣는 경우도 있다고도 했다. 또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 길가는 사람, 도로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등에 대해 과거 직업에서부터 성격, 집안 사정까지 꿰뚫고 있었다.
구간따라 1, 2시간 코스를 7회 왕복하면서 하루 종일 버스를 오르내린 탓인지 오후 8시쯤 일과가 끝났을 때는 다리가 쓰려 왔다.
문경여객은 지난 1960~1980년대 까지만 해도 상당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자가용 보급이 급속히 늘고 농촌 인구가 줄면서 승객이 급격히 줄었다. 버스 터미널에서조차 젊은 사람들은 눈뜨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문경시, 상주시 등은 시·군이 통합되면서 종전 농어촌 버스가 시내버스 체제로 바껴 버스요금이 되려 낮아져 더더욱 힘들다는 것.
문경여객 정휘우(42) 과장은 지난 7월 건설교통부가 실시한 벽지 노선버스 운행실태조사에서 문경에서 19억원, 상주에서 14억 원의 적자가 났다고 어려워진 경영여건을 설명했다. 오지노선보상금, 벽지노선보상비, 유가보조금 등을 지원받고 있지만 정상경영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게다가 내년에는 12대의 버스가 차령(車齡)이 끝나 한대당 5천만원 이상을 들여 버스를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
이현직(37) 기사는 "한 달에 일주일 이상 버스종점 마을에서 숙박을 하는데 요즘은 노인들이 밥 해 주기가 귀찮다며 거절해 마을회관에서 잠자며 지낸다"고 했다.
문경여객은 현재 예비기사까지 포함해 60명의 운전기사들이 일하고 있었다. 버스 조수일을 보면서 온갖 간난속에서도 승객들의 안전과 편안한 이동을 위해 힘쓰는 기사들의 자세에 고개가 숙여졌다.
마치 '인생은 버스나 기차 대합실에서 우두커니 차를 기다리다가 훌쩍 자신의 행선지로 떠나는 것'임을 깨친 듯이.
문경·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경선 일정 완주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가 지도자급'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