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주의 스크랩-아라파트 사망

팔레스타인의 국가적 영웅 야세르 아라파트가 사망했다.

뛰어난 언변과 외교력으로 1974년에 유엔에서 PLO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조직으로 인정받는데 성공한 그는 1994년 자치정부 출범과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금의환향', 1996년 초 자치정부 초대 수반으로 선출됐다.

1994년에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당시 총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1995년 11월 극우파에 의해 살해되면서 또다시 시련에 봉착, 2001년부터 지난달 말 프랑스 병원으로 후송될 때까지 가택연금을 당한 데 이어 내부로부터의 도전도 받는 등 생을 마감할 때까지 긴장과 투쟁이란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운의 영웅이다.

매일신문에서는 지난달 29일 아라파트가 치료차 파리로 갔다는 기사에 이어 11월 10일 이후 사망과 관련된 기사를 잇따라 실었다.

◇문제 제기

1. 아라파트가 어떤 인물인지 여러 측면에서 알아 보자. 그는 영웅으로 대우받았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골칫거리였다.

그의 사망에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 아라파트 사망 후 중동 지역은 상당한 후유증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각종 보도에서 우려하는 상황들을 정리해 보자.

3. 중동 지역은 지리적·경제적 이유 등으로 세계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중동 지역이 어떤 이유에서 주목받는지에 대해 알아 보자.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참고 자료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전세계적으로 445만 명으로 추산되는 팔레스타인인을 대표하는 정치조직. PLO는 이전에 비밀저항운동을 전개하던 다양한 팔레스타인조직의 지도부를 통일, 1964년 결성되었으며 1974년에는 유엔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조직으로 인정받았다.

PLO 내에서 활동하거나 관련을 맺고 있는 단체로는 파타(Fatah),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 팔레스타인 해방인민민주전선(PDFLP)이 있다.

또한 PLO와 연관된 테러조직으로는 파타의 검은구월단(Black September)과 PFLP의 총사령부가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영토분쟁.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의 반목과 투쟁의 역사는 기원전부터 시작된다.

2천여년 전 구약성서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언급된 가아안 지역에서 쫒겨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지가 된 가나안 지역을 회복하려는 욕구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

특히 1917년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 통치하고 있던 영국이 '발포어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국가 건설을 용인한 뒤 1947년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로 분할키로 의결함에 따라 분쟁이 본격화 됐다.

이후 제 1차 중동전쟁(1948년)을 통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70%를 점령했으며 팔레스타인 10만명이 강제 추방되자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장단체를 결성해 게릴라 투쟁을 전개해 오고 있다.

▲마흐무드 압바스

아라파트 사망 후 팔레스타인의 차기 후계자로 거명되고 있는 인물. 과도기간 실질 권력부서들을 통제하게 된 마흐무드 압바스(69)는 40여년간 아라파트의 오른팔이자 2인자로 상징적 지위를 지켜왔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과 파타운동 부대표로 현재 권력의 중심에 가장 근접해 있는 그는 지난해 4월 자치정부 초대 총리로 취임했지만 대(對)이스라엘 정책 등을 둘러싸고 아라파트와 불화를 빚어 재임 5개월도 채 안돼 사임한바 있다.

아부 마젠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아라파트의 그늘에 가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대중적 인기나 카리스마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있다.

그러나 아랍 지도자들과 탄탄한 인맥을 쌓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아라파트의 후계자로 거명돼 왔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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