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들·딸 다좋아" 4자녀 키우는 안철민·김남희 부부

'둘도 싫다. 하나만 낳아 왕자처럼, 공주처럼 똑 소리나게 키우고 싶다!'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걱정하는 소리들이 많지만, 요즘 대다수 젊은 주부들은 아이를 많이 낳을 엄두를 못 낸다.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맡길 곳도 마땅찮고 육아·교육비용이 만만찮으니 정부에서 내놓는 출산 장려책들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주부들에게 아이는 순리대로 낳아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키우라는 얘기를 하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구에서 1시간 가까이 차를 달려 구미시 공단동의 조그만 아파트를 찾아갔다. 안철민(43)·김남희(41)씨 부부와 네 자녀가 살고 있는 집. 그런데 첫째 유정(14·구미 신평중 2년), 둘째 혜진(13·신평중 1년)이와 셋째 지훈(5), 넷째 지현(3)이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늦둥이를 보신 모양이지요."

기자의 웃음 섞인 질문에 김씨는 딸 둘을 낳고난 뒤 아이를 더 가지겠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뜻밖에도 아이가 생겼고 또 뒤이어 넷째가 들어섰다고 했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가톨릭 신자여서 낙태는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김씨는 '마리아 사업회'로도 알려진 '포콜라레(Focolare)' 모임을 가지면서 마음가짐이나 생활방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인공 피임 등 생명에 역행하는 피임을 하지 않고 순리대로 자녀를 가지고 자녀도 구속하지 않고 키우려고 애쓴다는 이야기였다.

"포콜라레는 신앙을 초월한 모임입니다. 매주 한 번씩 모여 복음을 읽고 엄마들이 자녀와 남편을 사랑하는 방법,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왜 실패했는지 경험담을 나누며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 부부의 삶을 보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된다. 가능한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먹고 입고 생활하는 것을 되도록 자연에 순응하는 방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는 것이다.

"첫째 유정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2년 가까운 기간 동안은 제 마음도 많이 힘들었어요. 다른 애들은 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데 어린 동생들도 있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유정이를 보고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김씨는 여느 엄마들처럼 첫째에 대한 기대가 커서 엄마로서 욕심을 많이 부렸었다고 했다. 공부 안 한다고 아이를 다그치고 시험 성적이 안 좋다고 난리를 치고…. 엄마가 원하는 모습대로 아이를 만들겠다는 욕심에 아이에게 강요를 많이 했지만 이제 그런 마음들을 모두 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공부가 뛰어난 애들은 학원 공부가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 시간만 어영부영 때우는 결과가 되고 결국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게 되는 게 아닐까요?"

이들 부부는 우선 학교 공부에서 방법을 찾아보고 아이가 정말로 학원을 필요로 할 때 보내자고 마음 먹었는데 아이가 아직 아무런 얘기를 안 하는 걸 보면 불만이 없는 모양이라며 웃음 짓는다.

"대부분 부모들은 내 아이가 무엇에서든 첫째가 되기를 기대해요. 하지만 우리는 아이에게 공부를 강조하는 것보다는 다른 경험들을 제공하려고 신경쓰고 있어요."

유정, 혜진이는 기타 연주 실력이 대단하다. 성당 밴드로 활동하며 주일미사 반주를 맡고 있다. 유정이는 책을 열심히 읽는다. 혜진이는 학교에서 탈을 만들어 A+를 받을 정도로 미술에 자질이 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인생을 길게 봐야지, 대학을 목표로 삼으면 인생에서 걸 수 있는 게 바로 없어지지 않느냐"고 얘기하는 이들 부부는 설령 아이들이 대학에 못 가더라도, 조금 늦게 가더라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남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일을 찾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매달 아이들의 학원비를 따로 저축하고 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세계 일주까지는 못 되더라도 해외 여행을 가자는 계획에서다.

저녁시간이 되면 이들 부부의 집은 시끄러워진다. 일을 마치자마자 퇴근하는 아빠에게 서로 매달리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울기 일쑤인 지훈이와 지현이. 엄마 대신 카레라이스를 곧잘 만들며 엄마 노릇을 하는 큰 딸들. 이들 가족이 먹는 음식도 자연식으로 소박하다. 감자나 고등어도 기름에 굽거나 튀기는 대신 그릴에 굽고 김치와 된장찌개가 빠지는 날이 없다. 신혼 때는 빵을 많이 먹었지만 지금은 아예 빵은 간식에서 제외시키고 패스트푸드는 먹지 않으려 애쓴다. 아이들이 체하거나 아프면 아빠 안씨는 직접 배운 수지침 실력을 여지없이 발휘한다.

"아줌마는 공짜를 좋아하잖아요."

주변에서 얻어온 물건들로 집을 꾸민 것을 자랑스레 얘기하는 김씨.

"손자를 봐주는 할머니를 보면 손자 봐주지 마라고 얘기해요. 애들을 집에 놔두고 일하러 나가는 엄마들을 보면 애를 소홀히 생각하니 일하러 나가는 거지 얘기하죠. 사실 전 페미니스트(?)는 못 되는가 봐요."

"남편이 육아, 가사 등 많은 부분을 함께 해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제 일을 찾아 하니 엄마는 좀 소외(?)돼도 괜찮다"며 웃음 짓는 김씨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욕심으로 소중한 것들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사진설명 : "부모가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인공적인 피임을 하지 않고 순리대로 아이를 낳아 자유롭게 키우고 있다는 안철민·김남희씨 가족. 저녁, 작은 집에 여섯 식구가 모이면 시끌벅적한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하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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