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지나간 자리 발밑에 낙엽이 부스러지는데, 누가 은행잎 하나를 내 책갈피에 끼워놓았다.
문득, "다 같이 행복한 운명은 없다"는 호라티우스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호라티우스의 이 말을 넘어서기 위하여 우리는 죽는 날까지 우리 운명과 싸우는 싸움꾼이 아닌가. 이러한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는 역사적 전환기의 지식인일 것이다.
우리 지역 출신 조지훈과 이병철은 모두 식민지시대 경북 영양의 부유한 유가적 가문에 태어나 혜화전문학교에서 문학을 함께 공부하고 각각 '문장'과 '조광' 잡지를 통하여 등단한 시인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 운명에 싸움을 걸었다.
해방이 되자 조지훈은 청년문학가협회, 이병철은 조선문학가동맹에서, 각기 이념이 다른 문학 단체에서 요사이 말로 한다면 한창 뜨는 신세대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우리는 다 같이 당대 뛰어난 재능의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조지훈은 너무 잘 알고 있는 반면에 이병철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고 있다.
그 원인은 한국 전쟁기에 조지훈이 남을, 이병철이 북을 선택한 이데올로기 탓이다.
그런데 그들이 선택한 이데올로기란 조지훈에게는 역사에 맞서는 신명이었고, 이병철에게는 바위 속으로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와 같은 현실집착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을 역사 앞에 내 몬 것은 이데올로기 그 자체라기보다는 역사에 대한 지식인의 사명감 같은 유토피아 찾기 일 것이다.
그래서 조지훈은 남에서 지조 있는 학자로서 지천명을 못 넘겼지만 그의 자리를 분명하게 남겼고 이병철은 북에서 남쪽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몇 년 전까지 청진에서 고희가 넘도록 작품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그들이 역사에 신명으로 맞섰느냐 바위를 뚫는 소나무로 맞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치열하게 역사에 부끄럽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이 시대 고민 없이 아주 쉽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누가 "지금, 당신은?"하고 물음을 던진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조두섭 시인·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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