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방금

고추잠자리 다녀갔다.

여직 그림자는 흔들리고

저 무한 공간을

자유의 날개로

강물로 흐르는

붉은 파도떼 보인다.

뼈뿐인 다리,

저 다리, 저 눈알

이 가을 무사히 지탱해낼까 몰라

불쌍한 것.

박주일 '고추잠자리'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면 바람과 나는 혈육이다.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면 저 무한 공간이 눈물겹다.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면 돈도 명예도 사랑도 부질없다.

연민의 눈은 일회적 삶의 덧없음, 그 실존적 고독의 산물이다.

붉은 파도떼로 흘러갔으니 이곳에 다시 올 수 있는 고추잠자리는 이제 없다.

저 뼈뿐인 다리, 무한의 안쪽을 눈치채버린 연민의 눈알, 저 불쌍한 것. 이 가을 무사히 지탱할 수 없는 고추잠자리는 어쩌면 너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이다.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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