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치솟는 기름값에 연탄 '부활하다'

"어디요? 500장요! 네,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17일 대구 동구 율암동 대영연탄. 아침부터 밀려드는 주문전화에 사무실 직원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 탓에 연탄 수요가 폭증, 대구 연료단지 내 연탄공장들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연탄 부활하다

올 들어 대구 연료단지에서 하루 생산되는 연탄은 작년 평균 7만장에서 12만장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고유가 때문이다.

20년째 연탄 판매를 해온 김영경(50)씨는 "지난해에 비해 연탄 주문량이 딱 2배 늘었다"며 "비닐하우스나 축산농가 수요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가정용 기름·연탄 겸용 보일러가 등장할 정도로 일반 가정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연탄은 기름에 비해 비용 대비 열효율이 무려 5배나 높다고 연료단지 관계자들은 전했다.

요즘엔 일종의 유행을 타고 있기도 하다.

복고풍의 '연탄구이집'이 급증, 과거 연탄이 주었던 나쁜 이미지까지 희석되고 있다.

연탄의 부활은 '전후방 산업 연관효과'까지 내고 있다.

연탄배달뿐만 아니라 연탄보일러 설치까지 대행해주는 배달업자들은 최근 밀려드는 주문에 환호성을 지른다.

연탄 배달업자 이숙현(52)씨는 "올 들어 연탄이 잘 나가면서 연탄보일러 없느냐는 문의로 전화통이 불난다"고 말했다.

연료단지 인근의 연탄보일러 생산업체 수성보일러. 3명의 용접공들이 바쁜 손놀림으로 보일러를 만들지만 수작업이 많아 하루 생산량은 20여개에 불과하다.

주문표에 적혀 있는 주문량은 100여개나 된다.

물량이 달려 만들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수성보일러 권태호(48) 사장은 "1991년 걸프전 이후 처음 맞는 호황"이라며 "밀려드는 주문은 많지만 일할 사람이 없어 가족까지 동참, 일을 거들고 있다"고 했다.

◇향후 연탄의 모습

지금 연탄 판매가 폭증한다지만 대영연탄만 해도 8대 기계 중 1대만 가동 중이다.

예전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인 셈이다.

1980년대만 해도 대구 연료단지에 위치한 연탄 제조공장은 6개였고 직원도 400여명에 이르렀다.

당시 연탄 생산량은 연간 150만t.

이곳 사람들은 한때 연탄 공장 인기가 최고였다고 했다.

보수도 괜찮았고 성수기에만 바쁘지, 여름에는 할 일이 크게 없어 '연탄 공무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가 '호황'을 맞은 1987년 이후 연탄 소비가 줄면서 지난해 생산량은 4만여t에 머물렀다.

대구 연료단지 내 연탄공장도 현재 3곳만 가동되고 있고 직원수는 30명으로 크게 줄었다.

올해엔 생산량이 늘 전망이지만 총 생산량은 6만t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19세 때부터 연탄공장에서 일했다는 대영연탄 차봉조(64) 작업반장은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50,60대로 나이가 많아지면 하나둘씩 빠져나가는 반면 젊은 사람은 없다"며 "예전에 일하던 사람을 수소문 끝에 찾아 데려오는 형편"이라고 했다.

한편 2005년 완료 예정인 대구선 이설로 반야월역이 폐쇄되면 철도수송에 의한 원탄 공급이 중단, 공장 가동이 중단될 수도 있다고 이곳 사람들은 걱정하고 있다.

대구 연료단지가 향후 옮겨갈 대체부지마저 확보하지 못한 상황.

이기호 대구연료조합 상무는 "연탄 수요는 늘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부지를 찾지 못해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당장 서민 연료난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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