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숙자 1천명 '겨울이 무섭다'

노숙자들이 늘고 있다. 외환위기 파고가 극에 달했던 지난 99년 수준에 육박할 정도다. 99년 360명(대구시 집계)에서 정점을 이룬 뒤 꾸준히 감소하다가 지난해 332명, 올해 355명으로 다시 늘었다. 게다가 잠재적 노숙자로 분류되는 쪽방 생활자까지 포함하면 올 겨울 거리생활자는 1천여명을 웃돌 전망이다.

대구역을 집 삼아 지내는 40대 김모씨는 올해로 노숙 3년째. 실직한 뒤 쪽방에 살며 노동판을 떠돌다가 거리생활을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도 건강이 극히 나빠 보이는 그는 구걸로 얻은 돈을 주변 노숙자들과 술 마시는 데 탕진한다. 때가 찌들어 반들반들해진 옷소매로 연신 콧물을 훔치면서도 숙소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쉼터에 가면 '씻어라, 술 먹지 마라'며 잔소리가 많아. 얼마나 더 살겠다고 눈치보며 살겠어. 차라리 대합실에서 새우잠을 자는 게 낫지." 김씨는 술값이나 보태달라며 초점없는 눈길을 던졌다.

50대 이모씨는 노숙자로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한 편이다. 하지만 거리생활이 벌써 5년째. 아무리 노숙자라도 행색이 깨끗해야 구걸이 된다는 노하우를 터득한, 이 바닥에서는 '베테랑'인 셈이다. "대구는 겨울나기가 너무 힘든 곳"이라는 그는 조만간 지하철역에서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는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다. 고향인 서울로. "이혼한 아내와 두 자식은 잊은 지 오래"라고 말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떨궜다.

대구역 대합실과 주변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자는 30~40명에 이른다. 새벽 1시를 넘어서면 대합실은 엉망이 된다.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고, 여기저기 몰려 잠을 자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역무원이나 경찰, 자원봉사자들이 마음대로 제지할 수도 없다. 아픈 노숙자를 강제로 병원에 데려갈라치면 "왜 인권을 무시하느냐?"며 항의하고, 처음 보는 시민들도 덩달아 편을 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동대구역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고속철 개통과 함께 새 역사가 들어서면서 노숙자들이 지내기엔 너무 '깨끗해졌기' 때문. 2번 출구에서 지하철역으로 통하는 벤치에 노숙자 10여명이 머물고 있지만 좀처럼 역사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곳에서 3년째 생활한다는 장모(38)씨는 "때가 되면 식사를 주는 곳이 있어서 먹을 걱정은 없지만 이번 겨울나기가 문제"라며 "많은 노숙자가 대구역으로 떠났다"고 했다.

대구시 집계에 따르면 현재 거리노숙자는 175명, 쉼터노숙자는 180명에 이른다. 여기에 쪽방을 들락거리는 683명을 합치면 1천여명이 올 겨울 동사와 안전문제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특히 거리노숙자 50여명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경상감영공원, 신천변 등지에 머물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 쪽방 생활자 중 38%(261명)가 3년 이상 이곳에 생활하며 자활의지를 완전히 상실했고, 1년 미만 거주자 232명(34%)은 잠재적 노숙자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알코올 중독이나 결핵 등을 앓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역 뒤편에는 지난 15일부터 컨테이너 2대를 마련해 노숙자 겨울 쉼터를 만들었다. 난방시설은 물론 텔레비전까지 갖춰놓았지만 노숙자들은 한사코 거부한다. "컨테이너와 인근 노숙자상담센터에서 70여명은 잘 수 있는데 오는 사람은 40명 안팎입니다. 행여 추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제발 들어오라고 부탁하지만 요지부동입니다." 칠성자율방범봉사대 김무근 대장은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요즘 노숙자들은 자활의지를 완전히 잃었다"며 "쪽방값 7천원이 아까워 거리에서 잠자고, 그 돈으로 술을 마신다"고 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채정민기자 cwolf@imaeil.com

21일 오후 대구역 뒤편 노숙인 무료급식 지원센터에서 노숙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며 저녁 배식을 받고 있다. 사진 -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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