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구벌 일화-(17)살아있는 대구의 역사와 지명

역사와 지명은 세월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가.

달구벌(達句伐)로 지칭되는 대구(大邱)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때는 언제쯤일까. '3천년 전일까? 5천년 전일까?' 기록도 제각각이고 아직도 통일되지 않은 자료들이 혼용되고 있다.

종전까지는 대구역사가 3천년 전이라는 게 정설. 그러나 최근 대구시나 대구박물관 측 자료에는 대구역사를 '5천년 전'으로 변경, 2천년이나 늘렸고 각종 발간자료에도 이때로 통일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이는 몇 조각의 '토기' 유물이 발견되면서부터. 청동기시대 유물인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등이 지난 90년대 후반 북구 서변동 택지개발지구, 수성구 상동 지석묘 유적지 등에서 발굴됐기 때문.

그러나 이 같은 역사적인 무문토기 발굴에도 언론을 비롯해 대구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 '무문토기가 발견됐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식이었다"고 한 관계자는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대구의 역사는 5천년 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른다.

신천의 공룡 발자국처럼 땅 밑에 묻힌 유물이 새로 나타날지 모르기에 더욱 그렇다.

대구역사가 수시로 바뀌듯 지명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등 생멸(生滅)의 변화를 거듭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수성구 황금동(黃金洞)이 변화의 좋은 본보기다.

허허 벌판이던 이곳은 본래 동구 '황청동(黃靑洞)'으로 불렸다.

가을날 누른 들녘과 인근 푸른 산을 연상시키는 낭만적인 이름이다

그러나 한자로는 더없이 운치있는 이름 같지만 듣기에는 '황청'이 자칫 저승 세계를 의미하는 '황천(黃泉)'으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 주민들의 이의가 계속됐고 대구시는 1977년 12월 1일 오늘날의 이름인 '황금동(黃金洞)'으로 변경했다.

또 지난 2002년에는 수성구 '내환동(內串洞)'도 '대흥동(大興洞)'으로 바뀌었다.

'내환'의 본래 한자는 내곶(內串)이었으나 발음하기 어려워 자츰 내환으로 잘못 불렸으며 듣기에 따라서는 '내환(內患)'의 의미인 '집안의 걱정거리' 등으로 착각을 일으킬 수 있었다.

'내환동'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와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위한 아시아 최대규모의 월드컵 경기장이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동네이름 변경운동에 탄력이 붙었고 월드컵 경기전인 2002년 '대흥동'으로 탄생하게 됐다.

달서구 '파산동(巴山洞)'도 동네이름 변경을 추진 중이다.

주민들은 삼성상용차 등에서 보듯 '파산(破産)'으로 인식되는 것을 예방하고 사업체들의 번성을 위해 다른 이름을 갖길 원하고 있다.

동구 '지저동(枝底洞)'에서도 인근 대구국제공항과 어울리는 이름으로 바꾸기 위한 운동이 한때 있었다.

대구시 자치행정과 양현주 주임은 "동네이름이 어감이 좋지 않거나 혐오감을 줄 경우 해당지역 주민 80%이상의 찬성 절차를 거쳐 변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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