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피천득은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하는 사람이며,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아무리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고 했다.
인생의 반추가 장수의 중요한 요소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고귀한 회상이 가능한 것은 기억이라는 뇌기능 덕분이다.
기억이란 사람이 살면서 경험한 것을 뇌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어 사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등록, 저장, 재생의 3단계로 구성된 기억은 기억과다증과 기억상실증, 기억착오와 기시현상, 미시현상 등 여러 형태로 장애를 보일 수 있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기억상실을 보이는 주인공과 가족들의 심리적 고통을 소재로 하고 있다.
주인공 수진은 27세의 싱싱한 아가씨다.
그러나 윤기 나는 육체와는 달리 기억력은 형편없다.
어느 날, 값을 지불한 콜라와 지갑을 편의점에 두고 왔다.
이런 자신에게 분통이 터진다.
그때 마침 분풀이 상대가 걸려들었다.
수진은 콜라 캔을 들고 편의점을 나서는 남루한 남자를 발견한 것이다.
그를 절도범쯤으로 여기고 분풀이하듯 콜라를 낚아채 마셔버린다.
수진과 철수는 이렇게 만났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고,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마음을 닫고 사는 철수에게 수진이 노크를 한 셈이다.
수진은 거칠?건조해 보이지만, 진실한 철수에게 운명 같은 사랑을 느낀다.
지독한 사랑으로 결혼한 두 사람은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 지고지순한 그녀가 왠지 이상하다.
도시락 반찬은 잊고 밥만 2통을 싸거나, 집을 찾지 못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수진은 병원을 찾아간다.
치매의 선별검사로 널리 쓰이는 '간이정신상태검사'와 뇌자기공명영상 결과 그녀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였다.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어서 기억이 점차 지워진다는 것이다.
그녀에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철수는 아내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소변을 아무 곳에나 싸고, 남편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치매병원에 입원한다.
무작정 자기를 좋아해주던 수진을 통해 세상과 화해할 수 있었던 철수. 아내는 병들어 떠났지만, 그는 그녀를 보내지 않았다.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내 가장 슬플 때 나는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는 것은 사랑을 아니 한 것보다는 낫습니다.
"
치매라는 불치병에 걸린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애절한 사랑과 희생이 이 영화의 주제인 것 같다.
그러나 영화가 픽션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너무 했다.
가족력의 영향으로 27세의 아가씨가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걸렸다는 것은 너무 무리한 설정이다.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가장 중요한 위험요소는 '연령'으로, 60세 이후 급격히 증가한다.
65세 이후에 발병한 경우가 65세 이전보다 가족력과 연관성이 더 높다.
20대에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발병했다는 보고는 전무후무하다.
일반인에게 치매에 대한 인식이 잘못될까 우려된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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