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이데올로기 스트레스

평소 입심을 과시하던 한 국회의원이 현란한 비유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좌파정당 논쟁을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진짜 좌파는 자기네들인데 짝퉁(가짜)들이 왜 야단이냐고 일갈했다.

어느 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난주'매일춘추'를 읽고 향토 출신 시인 이병철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는 내용이다.

바로 그 이병철이 좌파시인이다.

퇴계학파의 거두 이현일의 후손 이병철은 1921년 영양 입암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러한 집안과 다르게 해방이 되자 김상훈·유진오·김광현 등과 함께 새로운 민족 건설에 앞장선 좌파 전위시인이다.

그는 찬란한 무엇을 찾아 월북하자마자 발 빠르게 동부전선을 따라 북의 종군작가로 전쟁의 당위성을 노래하는데 앞장섰다.

용케 임화·이태준·이원조 등의 남로당 숙청 고비를 넘기고 1995년까지 작품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런 이력으로 본다면 그는 좌파중의 골수 좌파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월북하기 전 해방기에 진짜 좌파였을까 하는 점이다.

"은하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 달뜨걸랑 나는 가련다", 이것은 해방기 '중등국어 교본'을 공부한 어른들에게 기억이 새로울 유명한 이병철 '나막신'의 한 구절이다.

이 작품 어디에도 좌파의 낌새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을 응시하는 유가적 기품이 서려 있는 내공이 꽉 찬 시다.

그렇다면 해방기에 이병철 스스로 좌파라고 자기 최면을 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몸에 밴 유가적 정신이 아닐까 한다.

무시무시한 거사를 앞두고 '머리를 감아 빗고'가겠다고 하는 발상 자체가 유가의 통과의례적인 예(禮)의 의식(儀式)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북한체제에서 쓴 그의 시편들에도 이와 같은 유가적 규율이 그의 몸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체제에서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이 엄청난, 우리 정치인들이 정쟁으로 공격받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조두섭 시인·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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