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1월 23일 오후 4시, 10여명의 충칭(重慶)임시정부 요인들이 김포비행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김구 주석, 김규식 부주석을 비롯한 임정 수뇌부 제1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조국광복을 바라며 27년간 피나는 투쟁을 헤쳐온 성과를 공인받지 못한채 개인 자격으로 환국했다. 이미 한반도 남반에 진군한 미군정이 원한 남한의 지도자는 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조국해방을 맞자 임시정부는 충칭에 주중대표단을 두고, 이청천, 이범석으로 하여금 일본군에 잡혀간 한국 청년들을 인도받은 뒤 광복군을 확대편성해 정부 자격으로 귀국할 계획을 세웠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씁쓸한 귀국을 한 이들의 일정은 다음날 오전 8시 김구가 서울방송국에서 '우리는 한데 뭉쳐 통일독립 완성을 최소한도로 단축시켜야 한다'는 귀국인사로 시작됐다. 오후 3시 30분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들은 정부를 가져왔지만 군정이 있는 한 우리 정부는 외국과의 관계를 갖지 않는다. 우리들은 개인의 자격으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국의 해방을 위해 싸운 연합국에 감사하며, 여생을 조국통일과 독립에 바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1919년 상하이에서 세원진 뒤 중국, 소련, 미국 등의 방해 또는 방관적 비협조로 갖가지 고초를 겪으며, 오로지 조국의 해방을 바라보며 중국 각처로 옮겨 다니며 투쟁을 펼치다 환국한 그들에게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다.
▲1934년 부산 영도다리 준공 ▲1936년 헨리 루스, '라이프' 창간 ▲1946년 남조선노동당(남로당) 결성 ▲1992년 필리핀 주둔 미군 완전 철수.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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