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스노 쇼

봄날 벚나무 밑에 세워둔 차가 연분홍 꽃으로 뒤덮여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나서 일부러 은행나무 밑에 차를 갖다두었다. '눈이 적게 내린다'는 소설(小雪: 22일)도 지나선지 빈 가지가 부쩍 많아진 나무들에게서 초겨울 내음이 묻어난다. 어떤 녀석은 완전히 나목이 돼있고, 어떤 녀석은 '아직도 난 짱짱하다구'강변하는 듯 수북이 이파리들을 이고 있다.

아침, 차엔 노오란 이파리들이 꽃잎처럼 사뿐 앉아 있다. 꼬질꼬질 낡은 차가 단풍차로 바뀌어 기분을 환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바퀴가 움직이자 하나 둘 흩날리기 시작해 이내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몇 차례 내한공연도 했던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 광대 슬라바 플루닌의 '스노 쇼(snow show)'는 런던의 로렌스 올리비에 상, 에딘버러 페스티벌 비평가 상 등 국제적인 연극상을 석권하며 세계 50여개국 관객들을 매료시킨 작품이다. 시베리아 벌판을 찾은 네 명의 광대들이 사랑' 실연' 고독 등의 주제를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무대언어로 정교하게 녹여 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중 압권은 겨울 달밤, 연인들의 작별 장면. 기차의 출발 경적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손에 건네 준 편지를 읽는 순간, 편지는 눈송이로 변하고 눈송이는 눈보라가 되어 객석으로 몰아친다. 우 우, 터져나오는 탄성!

플루닌의 작품들에서는 늘 눈송이나 풍선'비누방울이 등장한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덧없는 소유욕'. "녹을 수밖에 없는 눈송이, 터져버릴 수밖에 없는 풍선과 비누방울을 통해 소유의 덧없음을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긴 덧없음이 어디 소유뿐이랴. 세계 최고의 미인으로 꼽혔던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어느덧 72세의 할머니가 된 그녀는 요즘 제대로 숨쉬기도, 혼자선 거동도 힘들 만큼 늙고 병들어버렸다. '녹색의 장원', '젊은이의 양지' 등에서의 그 완벽했던 미모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약혼녀가 로또복권 1등 당첨금 34억원을 가로챘다며 소송까지 냈던 한 남자. 가난한 노래방 종업원이었던 그의 대박꿈은 약혼녀가 복권을 사지 않은 것으로 결론나 비누방울처럼 순식간에 터져버리고 말았다.

계절 탓인지, 덧없음'무상(無常) 같은 단어들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