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내에서 남쪽으로 40여km 떨어진 조그만 해안마을이자 양반촌으로 잘 알려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이곳 면 소재지 마을인 읍내리 서쪽에서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산이 바로 장기면의 진산(鎭山)이자 '장기읍성'이 있는 동악산(東岳山·해발 252m)이다.
동악산은 옛부터 쳐들어오는 왜구를 살피기에 알맞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산이었다.
1994년 국가지정 사적 제386호로 지정된 '장기읍성'의 경우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아 지난 98년부터 2010년 완공 목표로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복원공사가 부실이라는 지적과 함께 예산부족 등으로 하자가 발생하는 등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배일대(拜日臺)'라 새겨진 초석 등 중요문화재도 아직 방치되고 있어 보호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 현장을 향토사학자이자 이곳이 고향인 이상준(45·포항시 남구 오천읍)씨와 함께 둘러봤다.
장기읍성은 동악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등성이(해발 100여m지점)에 축조된 석성(石城)이다.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문헌에는 고려 현종2년(1011년) 토성(土城)으로 축조했다가 조선세종 때 석성으로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의 둘레는 1.3km, 성안 면적은 8만1천738㎡(2만4천726평)이며 성문 3곳(동문, 서문,북문)과 수문(수군들이 사용하던 문) 1곳, 치(雉·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하는 방어시설) 12곳, 우물 5곳, 못 3곳이 있었다는 것.
장기읍성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훼손됐다.
현재 복원공사를 끝낸 동쪽 성곽 수십m가 그런대로 옛 모습을 유지했을 뿐 나머지 성곽과 건물들은 모두 허물어져 제 모습을 찾기 힘든 실정이다.
승용차를 타고 좁은 진입로를 따라 동문(東門)에 이르렀다.
아직 복원되지 않은 동문 우측 구릉에는 한자로 '拜日臺'(일명 朝日軒)라 새겨진 초석만이 아무 보호없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장기읍성 안에는 현재 장기향교와 16가구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문화재청과 포항시는 당초 총 140억원을 들여 98년부터 2004년까지 성곽보수 및 건물 복원 등 장기읍성 복원공사를 마무리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마다 예산이 찔끔찔끔 내려오다보니 포항시는 다시 완공 목표를 2010년으로 늘려 잡고 있다.
성안 한복판으로 난 마을 길을 따라 복원공사가 끝난 동편 성곽 위쪽에 도착하니 문화재에 전문지식이 없는 기자의 눈에도 복원공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마치 회백칠해 공사를 마무리 한 듯한 성곽 윗쪽에는 벌써부터 여기저기 미새한 틈이 생기고 있을 뿐 아니라 바닥 역시 고르지 못했다.
이씨는 "갈라진 틈새로 빗물이 스며들 뿐 아니라 지난해 축조한 성곽 일부가 무너졌고 복원에 사용한 돌도 약하고 옛돌 재질과 달라 이는 문화재 복원이 아니라 짜깁기 공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지역민들이나 향토사학자는 오히려 복원하기 전이 훨씬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엄청난 예산과 함께 한번 시작하면 다시 원상회복이 불가능한게 문화재 복원공사인 만큼 철저한 고증과 지도감독이 뒤따라야 함을 새삼 느꼈다.
이씨는 시공업자가 자주 바뀌는 것 또한 부실을 부채질하는 큰 이유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즉 예산이 한꺼번에 내려오지 않고 수시로 시공업자가 바뀜에 따라 복원 공법 또한 업자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한편 이씨는 최근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산남의 진에 속한 의병들이 장기읍성내 장기순사 주재소를 습격한 사건의 전말이 적힌 판결문을 찾아냈다.
이 판결문이 발견됨에 따라 그동안 장기읍성 내에 있었다고 기록된 조해루, 향사당, 양무당 등 건물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가능해졌다.
"엄청난 돈을 들여 장기읍성을 복원하는 것인지 도리어 훼손하는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 취재 이후에도 이씨가 내뱉은 말이 귀전을 맴돈다.
포항·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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