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사회가 보수-진보세력으로 양분화되어 있고, 이를 둘러싼 국민의 대립과 갈등도 그 골이 점점 깊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국가보안법폐지안, 언론개혁법, 사립학교 법안 그리고 과거청산관련 법안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그 해법을 찾기보다는 점점 더 대립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해결해야할 사안마다 무엇이 가장 공익성에 부합하는 것인지,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수반되기보다는 힘을 써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할 뿐이다.
집단 이기주의가 여기저기에서 난무하고, 도덕적 정당성보다는 모든 사안들이 파워 게임을 통해 결판나는 듯이 보인다.
요즈음 나는 유년이나 청년시절을 회상한다.
학급 친구 5분의 1 이상이 점심을 싸오지 못해서 나누어주는 옥수수빵으로 점심을 때우던 초등학교 시절, 긴급조치와 함께 공수부대와 탱크가 대학정문을 가로막던 대학시절, 그리고 서울의 청계천 8가와 중랑천에 끝없이 이어지던 그 비참한 판자촌의 야학시절. 이 모든 아픈 기억을 넘어서 한국은 이제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러나 어렵게 쟁취한 우리의 성공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고, 국민은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하는 민주주의적 절차에 대해 인내심을 잃은 것 같다.
거기에다가 경기침체까지 겹쳐지다 보니, 사람들의 심사는 뒤틀려 있다.
거기에다가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은 몇몇 메이저 언론과 정치권이다.
언론은 자신들의 현실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을 축소·과장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서구의 언론이 보여주는 사실보도에 대한 최소한의 객관성을 우리 언론에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또한 지난 9월 이래 새로 구성된 국회는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핑계와 함께 공전을 거듭하고 있고, 국민이 바라는 입법을 통한 사회개혁작업은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토론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가는 건강한 정치권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인가.
이제 우리는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이분법으로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는 과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이분법을 넘어서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선 상대방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들으려는 적극적인 청취(active listening)자세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해야 하고, 모든 사안에 대해서는 양자택일의 해결방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3의 대안 혹은 제4의 대안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보수와 진보세력 간에도 서로 대립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관계에 있다는 점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사실 보수와 진보세력은, 꼼꼼히 짚어보자면, 좋은 가치를 많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 적대하고 있는 양대 세력 간에도 일정한 합의점을 찾아낼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진실로 필요한 것은 '의사소통의 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강조하는 대로 서로의 '차이'를 '차별'로 전환시키지 않고 평화 공존할 수 있는 자세야말로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요즈음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여성·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평화교육과 평화문화를 확산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작업이 '갈등해소와 관용교육'이다.
서구에서 진행된 평화교육 모델을 도입해 발전시킨 이 교육방법을 통해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렇게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운동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여론주도집단,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확산된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성숙된 시민사회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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