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정한 형제가 운영하는 시골 정미소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대하정미소 김대순(37) 사장은 26일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씨 속에서도 동생 만순(34)씨와 서울로 올려 보낼 포장쌀 생산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 정미소는 언제나 시끄런 기계 소리 속에서도 "형아", "동생아" 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산북면에서는 오순도순 다정한 형제 정미소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3년 전 김 사장 형제는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정미소 운영을 넘겨받았다. 둘은 10년 동안 아버지 밑에서 배운 도정 기술을 살려, 시골 정미소를 제대로 일으켜 보자는 생각에 밤잠을 설쳐가며 일을 했다.

옛 방식으로는 아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형제는 '브랜드 쌀' 생산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400여만원을 들여 재봉틀 기계를 도입하고, 좋은 벼를 사들여 2002년 가을부터는 첫 브랜드 쌀인 '청정수'를 생산했다. '청정수'는 산북의 자랑인 고찰(古刹) 김용사·대성사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물을 연상하도록 지어진 이름.

포장쌀을 트럭에 싣고 서울로 향했지만 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거래처를 뚫어 나갔는데 요즘엔 1주일에 20kg들이 400포대를 소화할 정도로 판매가 늘었다. 청정수 찹쌀의 경우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대구쪽에서의 택배 주문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문경에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200여 곳의 정미소가 호황을 누렸고, 정미소 주인은 농촌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엔 농협RPC 등 대형도정공장에 밀려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정미소는 마치 쇠락하는 우리 농촌을 상징이라도 하듯 흉물스런 모습으로 방치돼 있다. 문경지역에서 현재 가동 중인 정미소는 40여곳. 그러나 왕겨 한 바가지라도 알뜰살뜰 모아 축산농가에 팔아야 할 정도로 어렵다.

김 사장은 "정부가 작은 시골 정미소들을 외면해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동생 만순씨는 "정부가 농협 등 대규모 도정공장만 키울것이 아니라 마을단위 정미소에도 적정 운영자금을 지원하면, 수매 여력이 늘어나 농민들이 쌀 팔 곳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문제도 크게 해소될텐데…"라며 아쉬워했다.

문경·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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