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두번 간 군대…한 맺힌 50년' 국가상대 소송준비 최경대씨

"얼마 남지 않은 목숨, 한이라도 풀고 싶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8월 최경대(70·남구 봉덕동)씨는 한달 전 이미 입대한 형의 면회를 다녀오던 중 강제로 끌려가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다. 그리고는 57년 9월 다시 징집을 당했다.

최씨는 "대구농림고교 1학년(당시 16세)때 강제징집돼 3일간 군사훈련을 받고 미 육군314탄약보급사령부 경비병으로 근무를 시작, 한국군 105사단 소속으로 53년 3월 제대했다"며 "다시 징집당했을 때 병사구사령부를 방문해 항의했지만 논산집결소에 가서 이야기하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학도병 출신이라 군번도 없었던 최씨는 일단 입영한 뒤 귀향명령서, 연대장 표창장, 군대시절 찍은 사진 등을 제시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15개월을 복무한 뒤에야 폐병을 앓던 아내, 늙은 어머니와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형편이 고려돼 일병으로 의가사 제대할 수 있었다.

최씨의 형 역시 강제징집으로 전쟁터에서 사망하는 바람에 남은 가족을 돌볼 사람이 없었던 것.어려운 형편에 고학으로 경북대에 다니며 가족을 책임지던 최씨는 58년 제대한 뒤 칠성시장에서 빵 장사를 시작했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고, 결국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아내의 죽음을 눈물로 지켜봐야 했다.

잠시 교사생활을 하기도 했嗤?어머니와 아이 셋을 돌보기에는 벅차 다시 시장판에 뛰어들어 꽃 장사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재혼을 했지만 여전히 집안형편은 어려웠고 최씨는 가족의 불행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항상 괴로워해야 했다.

최씨는"내가 군에 두번이나 끌려가는 일만 없었어도 우리 가족의 불행은 없었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그간 최씨는 국방부, 육군본부 등에 수차례 진정하며, 두번 군에 가야했던 억울한 사연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99년 2월에야 비로소 국방부장관 명의의 '참전사실확인서'가 날아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반평생 넘도록 가슴에 맺힌 최씨의 한을 달래줄 수는 없었다.

제2군사령부에 참전사실확인서를 제시하며 손해배상을 신청했으나 법 규정에 따라 최씨의 권리가 시효 소멸했다는 회신뿐이었다. 절망에 빠졌던 최씨는 요즘 새로 용기를 얻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지난 18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고 항소심 재판 끝에 2천만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받아낸 지희봉(71)씨의 소식을 접하고 난 후부터다.

최씨는 "국가가 자료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던 내가 두번이나 군복무를 해야했다"며 "앞으로 나와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국가가 철저히 조사하고, 적절한 배상도 해야 한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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