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4 대구 취업 시계 '제로'

"동기 60명 중 45명 휴학·자퇴"

올 하반기 일자리는 모두 2만개.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지만 대구지역 취업준비생들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허허벌판'이다.

각 대학은 휴학생으로 넘쳐나는 반면 사설 고시학원은 북새통이다.

23일 경북대 도서관. 밤 10시, 도서관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전체 2천500여석 중 3분의 2 이상이 학생들로 찼다. 하지만 휴게실에서 만난 학생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제발 취직해야 하는데…." 합격 기도문을 외던 토목공학과 한 97학번(28)은 일자리는 늘었지만 취업문은 여전히 좁다고 우울해 했다. 학점 3.59(4.3만점)에 토익 905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 자부했죠.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공기업 커트라인은 960점을 넘어섰죠. 모자란 실력을 탓해야 하겠지만 악착같이 점수를 올려 놓으면 합격 잣대도 덩달아 올라가 버립니다."

20전 20패. 대기업에 원서를 냈지만 한 번도 면접을 보지 못한 사회과학대 한 97한번(27)은 고개를 떨궜다. "올 하반기 일자리는 최근 3년간 가장 많았어요. 기대도 컸죠. 하지만 입사경쟁률이 최고 600대 1을 넘는 최악의 취업전쟁이었죠. 날고 기는 친구들을 따라잡으려면 1년 더 재수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 절감했습니다."

자정 무렵 미래의 취업준비생들인 재학생, 휴학생들을 만났다. 그러나 현실은 더 암울했다.

"친구들이 실종됐어요." 공대 모과 98학번 김모(26)씨는 동기 60명 중 지금 학교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15명밖에 없다고 했다. 30명은 의대 등 '잘 나가는' 학과에 편입하려고 학교를 그만뒀고 나머지는 취업 한파를 피해 '휴학 중'이라고 했다.

2학기 휴학 등록이 끝난 현재 영남대 휴학생은 모두 2천673명. 지난해 2천379명, 2002년 2천205명에 이어 3년 연속 증가세다. 경북대 역시 올 휴학생이 7천612명으로 전체 재학생의 29.2%나 된다.

대학 강의실 붕괴다. 대학 역시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는 기현상에 처했다.

24일 찾아간 대구 시내 ㅎ고시학원. 최모(29·ㄱ대 95학번)씨는 "이곳에서 오며가며 마주친 재학생, 휴학생 후배들만 10명이 넘는다"고 했다. 취업률이 높은 공대생들도 고시학원에 몰리고 있었다. 같은날 ㄱ경찰고시학원에서 만난 김현철(00학번), 송영선(99학번), 이영수(98학번)씨는 모두 4년제 공대 휴학생들. 이들은 "대기업과 공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별 도움도 안되는 토익 공부에 목숨을 거는 선배들을 보며 아예 경찰로 진로를 바꾸는 공대생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졸업생은 물론 재학생, 휴학생이 대거 몰리면서 시내 고시학원가는 급팽창 중이다. 2002년만 해도 8개에 불과했던 7·9급 공무원, 소방공무원, 경찰 고시학원은 2년이 지난 현재 꼭 2배로 늘었다.

2002년 7천418명에 달했던 대구시 9급 공무원, 소방 공무원, 순경 응시생들이 하반기 공채가 끝난 올 현재 1만9천676명으로 급증했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