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슬럼프

'풍덩 떨어짐', '폭락', '부진'…. 영어 '슬럼프(slump)'의 사전적 의미다. 슬럼프의 이런 의미가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던 한 사례는 아마도 1929년 미국 뉴욕 월가(街)의 주가 대폭락에서 시작된 대공황이 아닐까 싶다. 미국발 대공황은 세계 각국으로 급속하게 번져 1933년까지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허덕였다. 당시의 대공황을 '1929년의 슬럼프'라고도 부르는 것은 슬럼프 라는 것이 그만큼 고통스러움을 대변해 준다.

○…일시 귀국한 야구선수 이승엽이 요즘 모교인 경북고 운동장에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수염이 텁수룩한 얼굴로 후배 선수들에 섞여 열심히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아시아 신기록의 라이언킹 이승엽. 큰 꿈을 안고 올초 일본으로 떠났던 그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조용히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뛰어난 실력과 겸손한 인간미로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와 열광적인 박수 세례 속에 파묻혔던 국민 타자였기에 지금의 그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 비쳐진다.

○…살다보면 누구나 몇 번씩은 마주치게 되는 것이 슬럼프다.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숙명과도 같은 존재랄까. 그것의 무서운 점은 자신감'성취감'기쁨'긍정적 생각 같은 것들을 빼앗아 가고 대신 무기력함과 열등감'불안감'부정적인 생각들로 채워 버리는 데 있다.

○…다행히 슬럼프는 대처하기에 따라 결코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준다. 잘만 극복한다면 이전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거지로 들끓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으로 경기를 회복, 지금까지 부동의 세계 최대 강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반면 '남미의 빵바구니'로 불릴만큼 풍요로웠던 아르헨티나는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해 지금껏 만성적 경기 침체에 허덕이고 있다.

○…이승엽은 프로야구 10년 동안 올해처럼 못한 적이 없다며 "슬럼프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마음 고생을 내비치기도 한다. 한편 야구와 인생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고도 했다. 그런 그에게서 희망을 본다. 지금의 슬럼프는 첫 이국살이에서 오는 '몸살'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찬바람 속에 홀로 땀흘리며 방망이를 휘두르는 그가 곧 홈런왕의 당당한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을 믿는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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