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김춘수 비가)

지금 꼭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하고 싶은데 너는

내 곁에 없다.

사랑은 동아줄을 타고 너를 찾아

하늘로 간다,

하늘 위에는 가도 가도 하늘이 있고

억만 개의 별이 있고

너는 없다.

네 그림자도 없고

발자국도 없다.

이제야 알겠구나

그것이 사랑인 것을,

김춘수 '제22번 悲歌'

선생님이 타계하셨다는 비보를 운전 중에 들었다.

핸들이 흔들렸다.

사모님 먼저 떠나보내시고, "우두커니, 하루 종일, 혼자… 이건 고문이야"하시던, "아내가 보고 싶어! 한 번만, 그래 꼭 한 번만이라도…!"하시며 글썽이시던, 매일 아침 일곱시면 십문 반 크기의 갈색 랜드로바를 신고 내 곁에 없는 너를 찾아 산보길을 나서시던, 이승의 둑길에서 저승의 천사를 만나고 돌아오시던 선생님, 우리 시대의 큰 시인 大餘(대여) 김춘수 선생님이 동아줄 타고 멀리멀리 떠나셨다.

가도 가도 하늘뿐인, 너는 없고 네 그림자도 없는 허무의 골짜기로 선생님 떠나셨다.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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