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칼럼-완벽성의 이면

50대 초반의 중년 신사 A씨는 수년간 지속되는 두통으로 인해 진료실을 찾아왔다.

지난 1년간 여러 병원에서 검사했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고 치료를 해도 좋아지지 않았다.

흔히들 그렇듯이 A씨도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의해 정신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A씨는 진료를 받기 전에 예약 시간보다 30분 일찍 병원에 와서 예약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정확하게 예약 시간이 되자 자신의 진료가 곧바로 시작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간호사에게 항의를 하였다고 한다.

당시 필자는 예약 시간을 5분 초과하여 진료를 보았던 것이었다.

물론 필자는 나중에 예약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못한 사실에 대해 사과를 하였다.

A씨는 대기업의 과장이었고 매사에 꼼꼼하며 일처리가 완벽하고 절대 시간을 어기는 법이 없어 직장 상사로부터 인정받는 간부이었다.

몇 차례의 면담이 진행되면서 그 동안 직장 내에서 겪어왔던 심리적인 중압감에 대해 얘기를 하였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학창시절을 보냈고 항상 남보다 잘해야 된다는 생각과 성공에 대한 야망에 불타 있어 지금까지 옆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내달려 왔다.

직장에서는 일을 잘 한다고 소문이 나 있어 중요한 프로젝트는 항상 A씨에게 주어졌고 늘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해왔다.

직장에서 인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잘 해야 된다는 심리적 압박이 심했던 것이다.

A씨의 경우는 만성적인 긴장에 의해 유발된 긴장성 두통이었다.

긴장성 두통은 머리와 목에 있는 근육들이 장기간 수축된 결과 근육에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생긴다.

흔히 뒷머리와 목이 뻣뻣하고 아프다.

이 두통은 A씨와 같이 항상 긴장 속에서 생활하는 '일중독'의 사람들에게 잘 걸린다

미국의 심장병 전문가인 프리드만과 로젠만은 심장병에 잘 걸리는 사람들에 대한 행동 특성을 연구하던 중에 'A형 성격(또는 행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여기서 A형은 혈액형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임의로 명명된 것임). A형 성격의 소유자는 경쟁적·적대적으로 목적을 성취하려하며 공격적이며 참을성이 없고 쉽게 화내는 것이 특징인 사람들로 관상동맥질환(협심증 등)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A씨의 경우에는 A형 성격과 유사한 '강박적 성격'에 해당이 되었다.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은 세세한 것, 규칙, 스케줄 등에 마음이 사로잡힌 완벽주의자이다.

그들은 예의바르고 완고하고 까다롭고 형식적이고 소심한 경향이 있다.

대인관계에서는 따뜻함이나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고 매사를 합리적이고 형식적으로 처리하여 남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냉담하며 지나치게 통제된 생활을 하므로 옹졸한 사람으로 보여 지기도 한다.

사회생활에서는 이들의 정돈성과 완벽성 때문에 융통성이 요구되는 직업에서는 실패하나 정확성이 요구되는 직업에서는 성공적일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경쟁적이고 모든 것이 바삐 돌아가는 사회에서 A씨와 같은 성격의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의 완벽한 성격 특성은 현재의 우리 산업을 한 단계 높게 발전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개인의 차원에서는 얼마나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는 시간에 쫓겨 다니는 생활에서 벗어나 가끔은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김희철(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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