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가장 성공한 운동을 꼽으라면?
얼핏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국채보상운동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국채 상환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에서 4만명이 참가한 구국운동이다.
감히 일제 침략에 대항한 이 운동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대구에서 출발한 담장 허물기운동도 그 못지 않게 사회적 파급력을 갖고 있다고 하면 과연 난센스일까.
담장허물기운동의 전파 속도는 눈부시다. 서울 부산 인천 등 전국 대도시에서는 이를 도입해 적지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고, 중국 일본 등에서도 이를 따라 배우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다. 대도시에서 이웃 간에 높은 담장을 없애고 공동체 문화를 만들자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의 얘기다. "우리에게 이 운동을 배워 간 서울, 인천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한 동네 전체의 담장을 허물고 있습니다. 얼마 후면 이들이 대구보다 훨씬 나은 성과를 낼 것 같습니다."
한 사업가는 "얼마 전 중국 선양(瀋陽)에서도 담장을 없애는 것을 봤다. 시 당국이 한국에서 배워온 이 운동을 맹렬하게 추진, 이웃 간의 담을 완전히 허무는 마을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이 운동을 배우기 위해 지금까지 전국의 시민단체, 공무원, 지방의회 의원 등 1천300여명이 대구를 다녀갔다. 대구가 정치성향, 경제력 등에서 변변찮게 내세울 것이 없다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을 듯싶다.
그렇지만 이 운동이 처음부터 각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시민들에게 호응을 얻기까지는 적지않은 어려움과 난관이 있었다.
대구시 자치행정과 권오곤 과장의 얘기다. "1999년 시 차원에서 이 운동을 적극 추진하자 온갖 우려와 부정적 시각이 팽배했습니다. '예산이 그렇게 남아 도느냐'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지요." 그중 '멀쩡한 담을 왜 허무느냐', '도둑이 들면 어떻게 하느냐', '사생활은 어떻게 보호되느냐'는 등의 문제 제기가 가장 많았다는 것.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지금까지 대구에서만 300여 곳에서 담장을 허물었지만, 이로 인해 도둑이 든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 담이 없어 외부에서 침입하기는 쉬워졌을지 모르지만, 개방된 공간에서 도둑질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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