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죄가 죄인 줄 모르는 아이들의 사회

휴대전화와 대리자를 통한 수능부정 사건. 아이들은 누구에게서 '부정'을 배웠을까. 두말 할 것도 없이 어른들에게서다.

아이들의 행동을 보면 그 나라 어른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어른들은 이제 아이들이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사실 준엄하게 꾸짖을 자격도, 염치도 없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당장 어제, 오늘 그곳에서(국회) 진흙탕싸움이 벌어질때마다 텔레비전 뉴스 맨 앞머리를 장식하는 풍경을 보라. 그 풍경 속에서는 누구도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자기가 정당하다고 우긴다.

많은 국민들은 분노하고, 일부 국민들은 냉소하고 그리고 체념한다.

분노와 냉소와 체념 이후에는 어떤 현상이 오는가. '저들도 저러는데'다.

합리와 이성이 설자리를 잃는다.

더디 가더라도 정당한 방법으로 가자는 소리는 실종된다.

나만 잘 되면 그만이다.

내 생각만이 관철되어야 정당하다.

상대나 세상은 무시해도 된다.

아이들은 부당한 것을 강요하는 어른들을 향해 분노하고 냉소하고 체념한다.

이후의 아이들은 어찌되었는가. 가치관의 상실이다.

모럴의 아노미상태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판단력 제로상태다.

아니, 무엇이 옳고 그른가는 이미 판단의 잣대가 되지 못한다.

옳고 그르냐의 가치는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게 이득이 되는 일이면 옳은 일이고 내게 손해가 나는 일은 그른 일이 되는 것으로 가치전도된 지 오래다.

시인 김수영이 병아리 농사를 짓는 데에 있어서 이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지인들에게 물은 일이 있었다.

추이를 보건대, 병아리 농사가 그리 이득이 날것 같지 않다는 전망들을 내놓았다.

병아리 농사는 지어보나마나 힘들거라는 의견들이 우세했다.

우리의 시인은 그 순간 자신이 병아리 농사를 지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무슨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 일을 해서 이득이 남느냐 안남느냐가 일의 계기가 되어서는 결국 아무 일도 못하리라고 시인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 일을 해서 이득이 남느냐, 안남느냐가 아니라 그 일이 힘든 일이냐, 아니냐가 일을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시인은 믿었다.

이제 이 시대는 시인이 병아리 농사를 지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그 일이 힘들기 때문이라는 말은 한갓 조롱거리로 전락한 시대가 된 것임에 분명하다.

모든 것의 가치가 이득이 남느냐, 안남느냐로 귀결되어 버린 시대에서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출세만 하면 그만이다, 나만 잘먹고 나만 잘되고 나만 잘살면 그만이다.

과정의 정당성은 개나 물어가라가 된다.

오죽했으면, 부정을 저지른 아이의 입에서, 그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될 줄을 몰랐다는 말이 다 나왔을까. 그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될 줄은 몰랐다는 소리는 수능부정 아이들한테서만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관행이었다는 말로, 어른들, 그것도 누가 그들을 지도층이라고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위 지도층이라고 하는 이들 입에서도 심심찮게 터져나온다.

늘 주고받던 일인데, 왜 새삼스럽게, 나만 붙들고 으르렁거리느냐. 그리고 나서 하는 소리는 재수없다다.

모든 과정은 그저 재수 좋으면 정당하고 재수 나쁘면 죄가 된다.

40여명이 넘는 남자 아이들이 서너명의 여자 아이들을 집단 성폭행하고도 말한다.

그것이 그렇게 나쁜 짓인 줄은 몰랐다고.

한국의 고등학교 1학년들이 '문제 해결력'에 있어서 경제협력개발기구 아이들 중에 1위란다.

1등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보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니, 그 아니 반가울쏘냐. 한마디로 한국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인데, 나는 어쩐지 공부 잘하는 한국 아이들이 그리 반갑지가 않다.

공부 잘하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공부만 잘하면 무엇하나. 문제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일텐데. 가는 길이 수월하지 않더라도, 아니 더디 가고, 누가 보면 답답하다 여겨지더라도, 수월한 길, 빠른 길말고도 여러 길이 있음을 혹 우리 아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어른, 가르쳐 주는 어른들은 어디 없는가. 문제풀이 속도 빠르다고 박수 쳐주는 사회의 어른들은 필시, 아이들이 다른 길을 기웃거리면, 왜 빠른 길 놔두고, 빠르고 이득이 확실한 길 놔두고 '딴짓'하느냐고 핀잔이나 하지 않을까. 수능 부정, 집단성폭행, 문제해결력 1위의 아이들은 과연 전혀 다른 아이들일뿐인가. 혹 이 나라 어른들은 수능에서 부정을 저질러도 집단으로 몹쓸 짓을 저질러도 그저 공부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이 사회는 종내, 죄가 죄인줄도 모르는 아이들이 집단으로 양산되고 있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오늘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선옥 소설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