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잊혀진 문화유산-흔적만 남은 의성 봉수대

요즘 같은 통신 수단이 없던 우리 조상들은 봉수를 통해 나라 안의 변란이나 외적의 침입을 알렸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수로왕이 신하에게 '망산도 앞 바다에 나가 붉은 기를 단 배가 나타나면 봉화로서 알리게 하라'고 지시한 기록이 있다.

군사적 목적으로 봉수 제도가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 중기 12∼13세기로 알려지고 있다.

100여년 전 봉수 제도는 폐지됐다.

전국 봉수대는 폐허화되고 잡초와 잡목만이 우거져 이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조선시대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의성은 군사용 봉수대가 많았다.

그러나 수백년이 지난 지금 그 자리만 있을 뿐 흔적이 대부분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스런 점은 1998년 4월부터 석달간 의성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과 회원들이 과거 봉수대가 있던 현장을 방문해 조사 활동을 벌인 것이다.

이들은 문헌과 각 마을 노인들의 구전을 토대로 산속 곳곳을 탐사한 결과 의성읍 고성산(현재 구봉산) 봉수대를 비롯해 금성면 영니산·승원산 봉수대, 대야곡 봉수대, 단촌면 마산 계란현 봉수대, 비안면 간점산 봉수대, 안계면 대암산 봉수대, 다인면 소이산 봉수대를 잇따라 찾아냈다.

탐사에 참가했던 박연후(58·의성읍 후죽리) 향토사연구위원은 "봉수대 주위엔 북쪽면을 제외하고 둑을 쌓게 되어 있는데 둑이 남아있는 곳은 승원산·영니산·고성산·마산 등 4곳 뿐이었다"며 "특히 계란산과 대야곡은 둑이 허물어져 없었고 비안·안계·다인의 봉수대는 맹수가 없었던 탓인지 둑을 쌓은 흔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과거 봉수대가 위치한 자리의 유지(遺址) 테두리만 남아있을 뿐이며 유지 가운데 기와나 도자기의 파편이 발견된 곳은 마산과 영니산이고, 소이산에도 기와조각이 발견됐다는 말이 전해지지만 현장 확인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성문화원은 1999년 '의성의 봉수대'라는 269쪽 분량의 책자를 발간하고, 봉수대를 복원한다는 계획까지 세웠으나 예산 확보 등 난관에 봉착하면서, 일단 봉수대가 있던 자리에 '봉수대 유지'라는 푯말만 세웠다.

그러나 그 푯말마저도 누군가에 의해 뽑힌 채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당시 현장조사 및 탐사에 나섰던 향토사연구위원들은 "의성읍 고성산 등 일부 봉수대가 있던 자리에는 묘지가 자리하고 있어 과거 봉수대 자리가 명당임을 짐작케할 뿐"이라며 "조상들의 지혜를 되돌아보고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봉수대의 완전 복원과 보존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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