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경제 삼키는 '공룡 할인점'-(2)점령당한 도심

대구·경북은 대형 할인점들에 주요 교통 요지, 도심 번화가마저 점령당했다.

대형 할인점들의 도심 진입 규제는 97년 국내 유통시장 개방 이후 완전히 사라졌고, 이후 역외 대형 할인점들의 대구 경북 도심 진출이 봇물을 이루면서 곳곳에선 교통 '혼잡'과 교통 '분쟁' 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형 할인점들의 대구·경북 도심 장악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례라며 모호한 교통영향평가 기준도 화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도심 장악

허가제였던 대형 할인점 설립은 1997년부터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등록제로 바뀌었다.

이로써 허가제 당시 상업지역에만 출점이 가능했던 대형 할인점의 경우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 준주거지역 등에 상관없이 일반 건물처럼 건축허가 요건만 갖추면 도심 진입이 가능해진 것.

이에 따라 역외 대형 할인점들은 대구·경북 주요 교통 요지와 도심 번화가를 집중 공략했다.

올 현재 19개와 내년 준공 예정 4개를 포함한 대구 대형 할인점 모두가 대구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10㎞ 내에 위치하고 있다.

포항에 들어선 4개 대형 할인점 역시 포항시민들의 주요 생활권인 포항오거리 일대를 장악했고, 구미 경우 구미공단 관문인 수출탑을 중심으로 3개 대형 할인점이 들어섰거나 출점을 추진 중이다.

지난 12일 문을 연 안동 이마트 또한 신시가지로 급성장하는 시내 옥동에 둥지를 틀었고, 영주 진출을 노리는 ㅅ사는 영주 교통의 중심, '휴천동'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대형할인점들의 시내 집중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다.

외국에서 대형 할인점의 도심 진입을 차단하는 이유는 '교통 혼잡'과 '교통 분쟁'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계명대 교통공학과 박용진 교수는 "미국의 경우 시 외곽지를 따라 창고 형태의 대형 할인점들이 벨트를 형성하고 있고, 도심 중심의 CBD(센트럴 비즈니스 디스트릭트)에는 백화점과 그 주변에 소규모 상권이 집중돼 있다"며 "일본에도 도심에는 소규모 유통업체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교통 '혼잡'과 교통 '분쟁'

이마트가 내년 입점을 추진하는 대구 수성구 황금 네거리로 가보자. 현재 중동로 및 동대구로 정체가 심각한 황금 네거리는 황금아파트 재개발에 따라 내년 안으로 4천256가구가 입주하는 곳.

지역 모 경제단체는 "황금 네거리 주변엔 내년 안으로 대우트럼프월드 1천15가구와 45층 주상복합건물 906가구도 들어선다"며 "여기에 대형 할인점까지 가세하면 이 일대는 서비스 수준이 가장 낮은 FF(자동차가 교차로를 통과하는 데 평균 2, 3번의 신호를 받아야 하는 수준)인 교통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영주 상가 연합회는 휴천동에 건립하는 홈플러스가 교통 요충지에 위치해 교통 흐름에 혼잡을 줄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홈플러스 부지 전면도로는 폭 16m 도로이지만 양쪽 1차로가 유료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고 바로 건너편에 대형 슈퍼마켓(450평)이 위치해 있다는 것.

'홈플러스 입점 반대를 위한' 영주시 상인연합회 김민규 위원장은 "홈플러스는 영주역과 불과 223m, 영주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남부 육거리와 110m, 남부초등학교 433m, 경북전문대학 543m, 꽃동산 로터리와 522m밖에 떨어지지 않아 이곳이 정체되면 주변 교통이 모두 마비된다"고 말했다.

대구와 경북 지자체들은 "97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으론 대형 할인점의 도심 진입을 규제할 방법이 없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청주시는 지난 6월 시 조례를 개정해 대형할인점 출점을 상업지역으로 제한했고, 대전시는 지난 7월 조례 개정을 통해 아예 3천㎡이상의 대형할인점 도심 진입을 2007년까지 원천 봉쇄했다.

◇브레이크 없는 교통영향평가

대전은 대형 할인점들이 출점 때 제출하는 교통영향평가서에 향후 교통량 증가량을 구시가지는 10년, 신시가지는 15년까지 예측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 경우 건설교통부 지침대로 향후 1년과 5년 두 차례만 예측하도록 해 당장 5년만 괜찮으면 10년, 15년, 20년 후에 아무리 교통이 혼잡해져도 이를 규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홈플러스 대구점으로 가 보자.

1996년 준공한 홈플러스 대구점은 '5년 규정'에 따라 1997년과 2001년 두 차례만 교통영향평가를 실시했다.

이 평가 결과 2001년 홈플러스 인근의 침산네거리 지체도(네거리 신호대기 시간)는 43초, 남침산 네거리는 145.1초로 조사됐다.

그러나 2002년 홈플러스 인근에 이마트 칠성점이 들어서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마트 칠성점이 실시한 2003년 교통영향평가 결과에서는 침산네거리 69초, 남침산 네거리 184.8초로 분석된 것이다.

2007년 분석에서는 침산네거리 90.7초, 남침산 네거리 292.8초로 나타났다.

결국, 2007년 침산네거리와 남침산 네거리 지체도는 2001년 홈플러스 분석 때보다 각각 2.10배와 2.01배나 늘어난 꼴이다

최초의 교통영향평가 후 재평가 기준이 있기는 하다.

환경·교통·재해 등에 관한 영향평가법규집에 따르면 사업지와 근접한 도로에서의 자동차 평균주행 속도가 교통영향평가 당시 예측보다 30% 이상 줄었거나 사업지와 가장 근접한 교차로에서의 자동차 평균 지체시간이 교통영향평가 당시의 예측보다 50% 이상 증가한 경우에 한해 재평가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의무 규정이 없어 사업자나 대구시가 스스로 이 일대 교통량을 재조사하지 않는 이상 재평가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대구 19개 대형할인점 중 재평가를 받은 할인점은 단 한곳도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재평가를 의무화하는 사후관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용진 교수는 "할인점은 사업이 잘 되면 잘 될수록 교통영향평가보다 교통량이 늘어날 개연성이 있다"며 "5년, 10년, 15년 등으로 나눠 재평가를 실시하고 교통영향평가가 부실했을 땐 엄격한 페널티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통영향평가 대행자를 대형 할인점 스스로 지정하는 것도 문제다.

객관성이 떨어져 과연 제대로 교통영향평가를 시행한 것인지, 끊임없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 일쑤다.

이에 따라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국가나 지자체가 교통영향평가 조사를 실시해 평가 비용을 공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주 경실련 관계자는 "교통영향평가가 적절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재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국가 및 지자체, 사업자의 책임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처벌규정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g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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