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학생의 자원봉사 체험기는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였다. 한 불우시설에 봉사활동을 나가면서 있었던 일을 적은 글이었다. 소년은 정기적으로 시설에 가서 청소와 빨래를 하거나 그 곳 아이들과 어울려 놀며 숙제를 도왔다. 그러다 소년은 자기가 싫어하는 김치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신기한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소중한 김치를 잘 보관할 냉장고조차 없는 가난한 그 곳 형편이 가슴 아팠다. 소년은 아이들을 위해 대형 냉장고를 한대 마련해줘야겠다고 결심한다. 비싼 냉장고를 마련할 방법을 잠 못 이루며 궁리하던 중,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 프로의 '풀어서 남주기'라는 퀴즈코너의 우승 상품이 김치냉장고인 것을 알고 출전 신청을 했다.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
소년의 사연을 가상하게 여겼든지 방송국은 출전을 허용, 그는 전화로 진행하는 퀴즈 시합에 나가 어른들과 대결을 벌였다. 시설 아이들이 김치를 맛있게 쪽쪽 빨아먹던 모습을 떠올리며 소년은 열심히 문제를 풀어 어른들을 차례로 이기고 우승했다. 소원이던 김치냉장고를 받아 시설에 선물하는 날,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고, 그동안 시설에 살면서도 숨어 있던 한 반 친구가 나타나 소년에게 고맙다며 손을 덥석 잡았다. 소년과 친구는 나중에 커서 어둔 밤을 밝히는 등대지기가 되자고 약속했다.
소년의 글은 읽는 사람에게 미소짓게 하고, 감동을 준다. 글은 짧지만, 자원봉사 활동이 청소년들을 얼마나 아름답게 성장하게 만드는가를 느끼게 하는 교훈이 담뿍 담겨있다.
연말로 접어들면서 지방자치단체와 관련기관들이 귀감이 될만한 자원봉사자를 선발해서 포상, 격려하는 등 결산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필자가 체험기를 읽게 된 것도 이런 연말 행사 중 하나인 공모 작품 심사를 맡았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봉사자들의 다양한 체험과 생각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찮은 연말 선물같다.
우리 사회에 자원봉사가 보편화되기는 오래지 않다. 대규모 국제행사가 빈번해지면서 여기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충당하기 위해 대대적인 자원봉사 캠페인을 벌였고, 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확대되면서 널리 알려진 것이다. 특히 대구는 최근 수년간 유니버시아드대회 등 굵직굵직한 국제 행사와, 지하철 참사 등 대형 재해를 겪는 가운데 자원봉사 활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더 왕성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원봉사는 자신과는 다소 먼 거리에 있는 일로 생각한다. 단체에 소속돼서 무리 지어 다녀야 하는 줄로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자원봉사의 역사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삼는다. 조직화된 모양새로 시작됐기 때문에 자원봉사를 잘못 이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자원봉사는 따로 있지 않다. 누구든지 혼자든 여럿이든 자발적으로 국가와 사회, 도움을 필요로 하는 타인을 위해 일하면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내려온 두레와 품앗이, 그리고 십시일반의 풍습이 우리의 자랑스런 자원봉사의 역사다. 선진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볼런티어(volunteer)란 말을 몰라도 자원봉사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등대불이 주는 희망과 축복
세모엔 사람들을 얼게 하는 추위와 흥청거림 때문에 불우한 구석들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더 감춰지기도 한다. 이 시기에 자원봉사자를 포상하는 것은 당사자에 대한 격려와 함께, 봉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표본으로 보여주자는 것이다. 또한 봉사의 바른 뜻을 알리고 전파해서 그 따뜻함으로 사회를 화기롭게 만들자는 뜻도 숨어있을 것이다.
앞의 소년과 같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보다 훨씬 더 고생하고 이로운 일을 한 아이들도 적지 않다. 전국의 학생 거의 모두가 작든 크든 봉사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 출발과 동기가 어떠했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원봉사가 가까이 있음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가히 미래의 등대 불 아닌가.
등대 불은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더욱 빛난다. 우리 사회는 이기적인 독선과 위선, 허영과 물신, 투쟁과 암투로 뒤죽박죽, 한치 앞을 보기 힘든 혼돈에 처해있다. 어둠이 잔뜩 내리는 인간 상실의 시대에 아이들의 자원봉사에서 작은 등대를 발견할 수 있음은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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