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경제 삼키는 '공룡 할인점'-(3)준 것 없이 퍼 가기만

대구·경북 소매상권을 싹쓸이하는 전국체인의 대형 할인점들은 지역에 무엇을 남기고 있나?

그들이 내세우는 것처럼 현지 인력 채용, 지역상품 매입 등으로 지역 경제에 엄청난 도움을 줬을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시도민들은 "대형 할인점들은 지역에 준 것 없이 서민들의 생계 기반을 붕괴시킨 채 퍼가기만 한다"고 분노하고 있다.

대구에 오픈한 대형 할인점은 모두 19개. 이중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역 4개 할인점을 제외한 15개가 이마트, 홈플러스, 월마트 등 역외업체다

지역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 할인점들의 매출액은 1조3천830억원. 이 중 매출 기준으로 지난해 역외 대형 할인점이 벌어들인 돈은 90%(지역 4개 업체 매출 1천300여억원)를 넘는다.

이는 지난해 대구시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1조2천500여억원에 이른다.

내년에도 대구에 4개 대형 할인점이 출점한다.

모두 역외업체다

이들이 오픈하는 2006년 이후 역외 대형 할인점들은 연간 5천억원 이상의 추가 매출을 올릴 것이란 예상이다.

경북 경우 이마트, 홈플러스 등이 포항, 구미, 김천, 안동, 영천 등지에서 12개가 성업 중이며 내년에 4개가 추가로 출점을 준비하고 있다.

16개 중 농협 등 2개를 제외하곤 14개가 역외 대형 할인점이다.

시장점유율이 오히려 대구보다 높다.

대구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 6년간 대형 할인점 매출액은 5조3천374억원이며 지역 유통업계의 분석(전체의 90% 이상)대로라면 역외 대형 할인점들은 4조8천여억원을 벌어들였다.

그러면 이 돈은 지역에 재투자될까? 따져보자.

이마트는 대구 경북지역 상품 매입에 2002년 1천억원, 2003년 1천500억원을 사용했고, 올해는 2천억원을 예상했다.

이마트는 "지역상품 매입 비율이 전국 최고"라고 했다.

고용 경우 대구 3천300여명, 경북 2천100여명 등 총 5천400여명이 근무 중이며 95% 이상이 현지 인력이라고 밝혔다.

홈플러스도 전국 31개점에 상품을 공급하는 업체 중 대구경북 업체는 18%에 달하며 지역 4개점에 1천500여명의 인력이 근무 중이라고 했다.

그 속을 들여다보자.

전국에 69개 점포를 가진 이마트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무려 7조2천418억원. 하지만 지역 상품 비율은 2.76%에 불과하다.

대구에서 농산물을 역외 대형 할인점에 납품하는 김모 사장은 "농협 등 규모가 큰 업체를 빼면 실제 지역업체 상품 매입 비율은 훨씬 적다"고 했다.

김 사장에 따르면 지역업체 대부분은 농수산물을 취급하고, 자금이 별로 없는 영세업체나 상인들이라는 것.

이들 지역업체 경우 역외 할인점에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선 서울 바이어로부터 자본 규모, 경영능력 등 3, 4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 영세업체들은 이 과정에서 '자본이 적다', '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런 저런 이유로 경쟁에서 밀려나기 일쑤라는 것.

"역외 대형 할인점들이 물건 납품에 공개 경쟁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이 자체가 영세한 지역업체에겐 차별입니다.

"

김 사장은 "역외 대형 할인점의 상품 매입 시스템은 대량구매 체제"라며 "대형 할인점들의 덩치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량 납품이 어려운 지역 영세업체들은 결국 명함조차 못 내거나 기존 거래선도 스스로 끊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대구의 한 의류업체 사장 이모씨 경우 얼마 전 자신의 의류브랜드를 역외 대형 할인점에 납품하기 위해 서울의 바이어를 만났다.

하지만 제품의 질보다는 돈이 얼마나 있느냐를 따졌고, 결국 '자격 미달'이라는 통첩만 받아들고 대구로 내려왔다.

납품을 하는 업체들도 속앓이를 겪는 경우가 적잖다.

지역의 역외 대형 할인점에 과일을 납품하는 최모 사장은 최근 특별행사로 인해 1년간 번 돈을 고스란히 까먹었다고 했다.

바이어가 특별행사에 내놓을 과일을 대량으로 구매, 납품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

평소 조달능력의 5배 이상의 물량을 대야할 최 사장은 거래선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특별행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행사기간 중 산지가격이 납품가보다 크게 올라 버린 것. 매일 산지에서 물량을 허겁지겁 맞춰온 최 사장에겐 치명타였다.

최 사장은 "저마진에다 산지 가격 급등으로 행사 뒤 수천만원의 빚만 남았다"이라며 "이럴바엔 소형 소매점으로 거래선을 바꾸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고용도 '빛 좋은 개살구'다.

홈플러스 경우 지역 4개점 인력 1천500명 중 1천160명이 비정규직(파트타이머)이다.

정규직은 대다수 공채여서 지역 인력이 별로 없다.

결국 지역 인력은 파트타이머가 대부분인 셈. 이마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역 유통업계에 따르면 파트타이머 경우 한 달 평균 70만~8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는 것.

파트타이머들은 번 돈을 다시 자신이 근무하는 할인점에서 상당액을 상품 구입에 써 대형 할인점들은 준 월급을 되가져가는 셈. 결국 고용을 통한 지역 재투자는 극히 미미하다는 게 지역 유통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세금은 어떨까.

지역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총매출액에서 재산세, 종합토지세, 면허세, 주민세, 취등록세 등 지방세 비율은 0.4% 수준. 이 중 처음 들어설 때 내는 취등록세를 제외하면 0.4%도 안된다"며 "연간 점포 당 1천3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역외 대형 할인점 경우 지방세는 4억원선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법인세 경우 국세여서 지방에서 거둬 고스란히 서울로 올라간다.

따라서 지역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지역 환원사업 경우 이마트는 대구경북 10개 점포 직원들이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시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거나 시내 주요 행사 협찬 등을 하고 있다고 했다.

홈플러스도 매년 20~30개의 캠페인을 한다고 밝혔으나 사내 동아리를 통한 지역 단체 지원, 소년소녀가장 돕기, 안심습지 안내도 지원 등 소규모 행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역 환원사업 중에는 대구구장 홈런존 행사, 지역단체마일리지제도 등 매출 증대를 위한 마케팅 행사도 적잖다.

대구백화점 한 간부는 "역외 대형 할인점들이 현지 인력 위주 채용, 대규모 지역 상품 매입 등 지역을 '사랑'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지역 재투자는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지역 유통업계는 "지난 6년간의 4조8천여억원(매출의 90% 기준) 거의가 역외로 빠져나갔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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