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한 가지에 몸바쳐 몰입하여 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쉼없는 열정은 언젠가 그 분야에서 '1인자', '명인', '거장'이라는 칭호로 보상받게 된다.
그런 길을 올곧게 걸어가는 젊은이가 있다.
연극인 이정훈(31)씨는 지역에서는 다소 생소한 마임의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요즘 그는 이달 말쯤 공연 예정인 일인극 '콘트라베이스' 준비에 한창이다.
2002년 대본 연습에 들어갔으니 공연 준비에만 무려 2년이 흘렀다.
"상당히 어려운 작품이더군요. 그동안 후회와 포기도 많았지요. 하지만 이 작품을 끝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겠다 싶더군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남성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배우가 연극을 통해 소시민의 생존을 다룬 작품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지요. 하지만 이 악기가 없으면 협연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런 점을 우리 사회에 투영해보았어요."
이씨가 그동안 무대에 올렸던 작품 리스트를 살펴보면 마임을 위시한 일인극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연극은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하잖아요. 관객과 뭔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너무 좋아요. 소극장만 찾게 되고 일인극만 고집하는 이유지요."
특히 별다른 무대장치 없이 자신의 몸에서 나는 소리만을 통해 관객들과 대화하는 마임이 그의 머릿속에 가장 흥미로운 장르로 각인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화려한 무대세트에 관객의 시선을 빼앗길 염려도 없고, 배우의 연기력 하나만으로 승부를 해야 하니까 연기자의 진실이 가장 잘 드러나잖아요. 이것이 마임의 매력이지요. 또 혼자서 하기 때문에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데다 조명, 장치, 음악, 연출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지요."
하지만 즐겁지 않은 것에 주의를 잘 기울이지 않는 요즘 대중들의 시선은 그를 무척 어렵게 했다.
게다가 이방인에 대해서는 더욱 배타적인 대구의 정서는 그에게 큰 걸림돌이었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가 대구와 인연을 맺은 이유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배우인 장두이씨 때문이다.
장씨가 1997년부터 대경대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서 그도 대구문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대구는 이곳 말투를 쓰지 않는 사람이 살기엔 정말 힘든 곳이더군요. 게다가 마임은 대중적 코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먹혀들기엔 역부족이었고요."
그래서 이씨가 빼든 카드는 지역 연극계의 한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의 연기 세계를 이해해줄 거라 믿었다.
그동안 지역 극단의 작품에 세차례 참여했고, 올 대구연극제에서는 우수연기상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이젠 질 좋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 제 스타일을 인정받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 지역에서 더욱 열심히 뛰기 위해 '크레이지 버드'라는 극단까지 만들었다.
자유와 영혼을 대변하는 새처럼 미쳐가겠단다.
그에게 연기는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대신 연극을 업보라고 믿는 그의 다음 목표는 지역 공연문화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이제 시험대에 올라선 만큼 연극에 단단히 미쳐야겠지요." 연극에 '미친 새'가 푸른 창공을 한껏 날아오를 그날이 기다려진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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