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외로웠으면 스스로 세상을 버리기까지 할까. 기러기 아빠가 또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우리를 애달프게 한다. 10년전 부인과 별거한 뒤 두 자식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고 노모와 단둘이 살고 있던 서울의 50대 '기러기 아빠'가 사업실패와 빚, 학비 압박감, 여동생에게 생활비까지 타 쓰게까지 된 처지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얼마전엔 딸 둘과 아내를 캐나다로 보낸 40대 기러기 아빠가 자택 소파에 기댄 채 홀로 숨진 모습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90년대부터의 조기 유학 열풍으로 기러기 가족들이 급증하고 있다. 자녀만 보낸 경우도 있고, 자녀와 아내를 함께 보낸 뒤 가장(家長) 홀로 국내에 남는 경우도 있다. 기러기 엄마보다는 기러기 아빠들이 대부분이다. '규합총서(閨閤叢書)' 에 기러기는 신의(信),예절(禮),절도(節),지혜(智)의 덕(德)을 가진데다 암'수컷의 사이가 좋아 전통혼례때 나무기러기(木雁)를 주고 받는 의식도 있어 다정한 부부,다복한 가정을 상징하는데서 '기러기' 라는 닉네임이 붙여진 모양이다.
▲교육열이라면 세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힐만한 우리나라인지라 자녀들을 외국유학보내는 가정이 크게 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조사에 따르면 1999년 1천839명이던 초'중'고 유학생 수는 2000년 4천397명, 2001년 1만132명으로 급증 추세다. 단기 연수생을 포함하면 훨씬 많다. 대학 유학생도 99년 12만170명, 2001년 14만9천933명, 2002년 15만9천903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요즘은 자녀와 아내를 서울에 보내고 가장 홀로 지방에 남는 국내판 기러기 가족도 많다.
▲ 자녀의 장래를 위해 스스로 외로운 선택을 하는 부모들의 적극적인 교육열은 탓할 일이 못된다. 문제는 이런 신종 이산가족들이 기대만큼의 근사한 결과를 얻는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현실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거다. 특히 기러기 아빠들은 외로움과 소외감, 불규칙한 생활 등으로 건강을 해치기 쉽고 돈 버는 기계가 돼버린 듯한 회의감 등으로 우울증에 빠지기도 쉽다. 사업실패나 실직의 파도로 생의 의욕을 잃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서지는 기러기가정들도 적지 않다.
▲일류대학병'성적지상주의로 우리사회는 심각한 난치병에 걸려있다. 미증유의 수능부정사건도 그 한 증상이다. 교육환경이 나빠질수록 기러기 아빠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 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기러기 아빠들이 절망 속에서, 절대고독 속에서 몸부림쳐야만 할지 안타까운 일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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