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재개발의 그늘-(2)누구를 위한 임대아파트인가

월세나 전세를 사는 달동네 이웃들의 평생 소원은 임대아파트 입주다.

하지만 저소득층을 위한다며 재개발 달동네에 들어서는 임대아파트들은 '없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공간이 결코 아니다

달동네 세입자들이 손에 쥐는 이주비용이 300만~500만 원이 고작隔?아예 아무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재개발 지역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임대 아파트는 보증금만 3천만~4천만 원을 넘고 있는 실정이다.

◇누구를 위한 임대아파트인가

'보증금 3천800만 원에 월세 24만 원.'

1997년 주거환경개선지구로 공고돼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 대구 북구 대현1지구(감나무골)의 임대아파트 분양가다.

감나무골은 대구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마을의 주민들은 50년 만에 찾아온 개발 붐에 '우리도 이젠 번듯한 집을 가질 수 있구나'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면 홀몸노인, 장애인, 모자가정 등 나라에서 생활 보조금을 받아 근근이 생계를 꾸렸던 감나무골 세입자들은 꿈대로 임대아파트에 입성했을까. 2002년 대현1지구에서 인근 2지구로 이사 와 전세를 사는 정모(71)씨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했다.

월세 5만~10만원짜리 단칸방을 전전했던 가난한 달동네 이웃들이 어떻게 이런 '부자'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겠느냐는 것.

10년 간 대현1지구 월세방에 살았던 정씨의 이주비는 450만 원.

정씨는 "쥐꼬리만한 이주비를 주고 수천만 원짜리 임대아파트를 짓는 이유가 뭐냐"며 "이주비가 부족했던 이웃들은 대구역사, 칠성동 인근의 쪽방이나 거리 노숙자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고 장탄식했다.

정씨는 97년 주거환경개선지구 공고 이후 동네에 이사 온 세입자의 경우 보상규정상 아예 이주비조차 받지 못했다고 했다.

없는 사람들을 두 번 울리는 임대 아파트 현실은 모든 주거환경개선사업 지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2002년 분양한 중구 남산4-2지구로 가보자.

당시 이곳엔 338가구, 1천100여 명의 원주민들이 거주했고 세입자만 253가구(74.8%)에 달했다.

그러나 임대아파트는 전체 분양 804가구의 19.3%인 155가구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3년 전 남산3동으로 이사 온 배모(72) 할머니는 "이주비용이 300만 원 내외에 불과하고 사업 공고 이후 이사온 세입자들은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또다른 재개발 지역이나 오토바이 골목, 남산3동 등 이전보다 더 못한 불량주택 동네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암주거환경개선지구에서 같은 신암동으로 이사한 홍모(77)씨는 "임대아파트 짓는다고 좋아했지만 보증금 2천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였고 20평 이하는 아예 없었다"며 " 너무 비싼 임대아파트는 가난한 달동네 이웃들에게 대안적 주거가 되지 못한 채 오히려 안정적인 보금자리만 박탈하고 있는 셈"이라며 씁쓸해 했다.

◇이젠 짓지도 않는다

대한주택공사가 올해 대구에서 주거환경개선사업 뒤 분양한 남구 이천 2-5지구(431가구)와 중구 봉산지구(295가구) 아파트는 일반분양만 했고, 2003년 분양한 수성1-1지구도 임대아파트를 짓지 않았다.

주공 대구경북지사 관계자는 "시 조례를 통해 임대주택 건설과 비율을 의무화 한 서울, 부산 등지와 달리 대구의 경우 권장사항에 불과하다"며 "주민들과의 협의를 거치고는 있지만 임대주택을 어느 정도 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별다른 기준이 없다"고 했다.

시 관계자는 "현행 이주비용 규정으로는 주건환경개선지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여력이 없고 임대수요가 줄자 아파트 개발업자들도 임대주택 건축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저평형 아파트가 많으면 많을수록 집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의 반대도 만만찮다"라고 밝혔다.

주거환경개선 사업으로 아파트에 입주했거나 분양을 끝낸 20개 지구 6천506가구 중 살던 곳에 재정착한 원주민은 49.0%에 그쳐 51.0%에 달하는 나머지 3천326가구(1만3천여 명)가 타 달동네 등 도시 곳곳을 떠돌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12개 지구, 5천542가구(1만5천582명와 내년부터 2단계 사업에 돌입하는 9개 지구 3천410가구(8천673명) 또한 이 같은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대구과학대 부동산학과 윤종섭 교수는 "재개발 임대아파트 경우 높은 공급 가격과 임대료 때문에 원주민들이 재정착을 못하고 다른 불량 주거지역으로 이주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며 "도시재개발 혜택이 원주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임대주택 건설을 늘리고 임대료도 낮춰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소형 임대아파트 늘려야…

임대아파트 입주가 불가능한 달동네 이웃들은 결코 비슷한 환경의 또다른 달동네로 떠도는 것을 원치 않는다.

모두 보증금 200만~300만 원에 월세 10만~20만 원의 영구 임대아파트라도 입주를 희망한다.

하지만 영구임대아파트 입주도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된 대현2지구에서 이사를 준비하는 최모(47)씨는 "대현동 전체의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자격자는 450가구에 달하지만 실제 입주자는 올 한 해를 통틀어 겨우 3가구에 불과했다"고 우울해 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달동네 이웃 등 저소득가정을 위한 영구임대아파트는 90년대에 집중적으로 들어서 현재까지 13개 지구(1만9천657가구)가 건설됐지만 1995년 이후 건설이 중단돼 지금은 2,3년을 기다려도 입주가 힘들다.

지난 3년 간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신청건수는 총 3만4천631건에 이르지만 실제 입주자는 8천905가구에 불과한 실정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소득이 올라 기초생활 수급자에서 탈락한 입주자를 내쫓는 것.

하지만 ㅇ복지관 관계자는 "이들 대부분은 다시 달동네를 전전하고 다른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며 "정부재정상 영구임대아파트 건설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면 달동네 이웃들의 주거 복지향상을 위해 경제적 능력에 따른 다양한 소형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취임한 주택공사 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중대형 임대아파트 공급을 대폭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임대아파트의 싸구려 인식을 바꾸겠다는 것. 다시 말해 20평형 미만의 소형 임대아파트는 가능한 한 짓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달동네 이웃들의 임대아파트 입주는 영원한 난제로 남아 있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g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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