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송년회'가 구조조정 대상에 들었다.
역내 일부 기업은 올해 좋은 실적을 거둬 두둑한 연말 성과급을 줬거나 지급할 예정이지만 '흥청망청 송년회'는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런 가운데 일부 기업은 이웃과 함께하는 송년회를 마련, 세상에 온기를 전해주고 있다.
◇사랑을 내뿜는 가스회사
21일 오전 대구 중구 남산4동 (주)대구도시가스 본사 회의실. 10여 명의 직원들이 '심각한 얼굴'로 저마다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내년도 사업 전략회의 같았지만 이날 회의는 오는 27일 대구어린이회관 꾀꼬리극장에서 열리는 '사랑의 음악회' 준비팀의 최종 점검 회의였다.
이 회사는 27일 소년소녀가장 350명을 초청, 직원 및 가족들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갖는다.
대구소년소녀합창단, 퍼니 밴드, 피케이힙합댄스, 대구태권도협회시범단 등이 무대에 오르는데 음악회 경비 4천만 원은 전액 대구도시가스가 부담한다.
대구도시가스가 올해 올린 당기순이익은 40여억 원. 이번 음악회에 대구도시가스 순익의 1%가량이 투입되는 셈이다.
대구도시가스는 3년 전만 해도 호텔을 빌려 계열사 직원까지 모두 참석하는 대규모 송년행사를 가졌다.
하지만 술잔만 오가는 '의미 없는 송년회'에 대해 회사 측과 직원들이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고민은 장애 어린이와 함께하는 '사랑의 음악회'라는 결실을 맺었다.
사실 회사 측은 '회식'이 사라져버려 직원들이 탐탁지 않게 여기리라는 생각도 했지만 결과는 반대. 직원들은 이 음악회에 가족까지 데려와 지난해에는 관람석 700자리가 모두 차버렸다.
김형태 경영기획팀 과장은 "가족은 물론,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송년회가 직원들 모두에게 의미 있는 연말을 선물할 것"이라고 했다.
◇변화의 확산
평화산업은 회사 공금이 들어가는 '송년회'를 열지 않는 것은 물론, 올해 계열사를 포함한 회사 순익의 1%를 복지사업에 기부키로 했다.
직원 봉사단인 '평화사랑회'가 벌이는 모든 봉사활동에 이 자금이 지원된다.
연말을 맞아 평화사랑회는 먹고 마시는 송년회 대신 '풍부한 경비'를 갖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인다.
대구은행은 회사 송년회 대신 21일 아동복지시설인 호동원 원생 30여 명을 대구 대명동의 이 회사 직원복지시설로 초청, 직원들과 원생들이 저녁을 같이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은 18일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사나사)' 회원 40여 명이 대구시내 복지시설인 새볕원을 방문, 원생들과 함께 영화관람과 식사를 하면서 송년모임을 가졌다.
'1부서 1봉사활동'을 펴고 있는 삼성전자 구미공장은 부서 특성에 맞춰 각자 복지시설 등을 방문하는 송년회를 하고 있다.
특히 공무그룹 봉사팀은 18일부터 혼자 살아가는 노인들의 집을 방문해 도배, 집수리 등의 기술봉사를 벌이고 있다.
이처럼 역내 대다수 기업이 회사 차원의 대형 송년회를 없앤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왜 변할까?
기업 송년회가 '조용하게' 흘러가는 것은 일단 경기 탓이 크다.
올해 경기는 물론, 내년 경기도 좋지 않을 것이란 전망 때문.
역내 대다수 기업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연말 회식비 지급을 없애거나 액수를 대폭 줄여버렸다.
대구지역 모 금융회사 부장급 직원은 "예전엔 연말이면 부서별 회식비 지급이 관행이었는데 올해부터는 딱 끊어졌다"며 "내 돈 내고 부서 회식을 해야하는 형편이니 부장급 직원들부터 송년회 얘기를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김귀식 평화산업 부사장은 "환율·유가·원자재 가격 등 국내외 환경이 모두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에도 힘쓰겠지만 일단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회사들의 판단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직원 개인별 성과급 지급은 물론 연말 회식비까지 내놓는 기업도 여전히 적지 않아 송년회 문화의 변화가 반드시 경기 탓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대구지역 한 기업은 300%의 개인별 성과급에다 연말 격려금까지 줄 예정이지만 먹고 마시는 송년회는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 차부품업체 역시 실적이 좋아 성과급이 지급됐지만 '모임' 구성이 잘 안 되는 모습.
직장인들 성향이 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개인주의가 강한 젊은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직장 송년모임에 대한 호응이 크게 낮아졌다는 것.
브랜드가치 평가기관인 브랜드스톡(www.brandstock.co.kr)이 리서치 패널 3천146명을 상대로 최근 설문조사한 결과, 가고 싶지 않는 송년모임으로 '직장송년모임'이 전체 응답자의 45.2%(1천422명)를 차지하며 1위를 달렸다
채용정보업체 파워잡이 직장인 53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최악의 송년모임으로 '흥청망청형'을 꼽은 응답자가 50%(266명)에 이르렀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m사진: 대구도시가스'사랑의 음악회'준비팀원들이 27일음악회에 초청된 소년소녀 가장에게 선물할 방한복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