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역이라면 좋겠다/ 사방팔방으로 가도 좋으니까/ 마음 헛짚어/ 역마살이 끼어/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어도/ 역은 항상 역으로 거기 그 자리/ … / 상처받은 가난한 마음의 행로여/ 내 마음의 행군이여/ 이 저녁 역으로 가는 길에/ 발자국을 남기고/ 역마살을 남기고'.
대구문인협회 회장인 박해수 시인이 몇 해전 발표했던 역(驛) 순례 시 구절을 새삼 들먹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년 9월 개통을 앞둔 대구 지하철 2호선 대공원역이 전동차가 서지 않는 유령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는 매일신문 보도(12월6일)와 관련 박 시인이 내놓은 문학인다운 제안이 가슴에 와닿아서이다.
대공원역은 인근에 대공원이 들어설 경우 승객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다른 역에는 없는 지하 1층 광장부와 전시실, 지하 벽천분수 등 문화시설까지 갖춘 2호선의 '상징역'으로 부상할 전망이었다.
그런데 대공원 조성 계획이 불투명해지면서 서울의 마곡역처럼 유령역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보도를 접한 시인은 대공원역을 대구의 문화예술을 상징하는 역으로 만들자는 제의를 했다.
대공원역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예술의 징표인 문화 존을 조성하자는 얘기다.
대구·경북을 아우르는 문화예술을 집대성해 정신문화의 주춧돌을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문화박물관과 문학관과 민속관도 세우고, 창작 열기 가득한 예술인촌도 들어섰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청소년들의 최첨단 문화공간까지 조성된다면 금상첨화이겠고….
전남 담양군의 가사문학관이 연간 3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의 집이 세계적인 문화 명소가 되었다.
러시아에는 톨스토이역이 있다.
춘천의 신남역이 김유정역으로 바뀌면서 인근의 김유정문학촌이 한결 문학적이고 운치 있는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2호선 구간 26개 역 중 대구의 문화와 예술을 상징하는 역 하나쯤 있는 것도 대구시민의 문화적인 자긍심을 되살리는 일이 아닐까. 대구의 서정을 담은 역 하나. 낭만이 있는 지하철역.
월드컵경기장 개장과 더불어 시원하게 뚫린 담티고개와 대공원역에 이르는 도로는 조경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 타계한 김춘수 시인이 영남대에 재직하는 시절 시상에 젖어 넘나들었던 길목.
대공원역 일대. 이곳이 문화 존으로 조성된다면, 자연경관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명물거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 17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구의 힘, 문화의 역할' 아트포럼에서 문화산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릴 것이라고 한 조해녕 대구시장의 말을 주목한다.
역이란 종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회색빛 도시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징검다리, 가파른 삶속에서도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을 수 있는 그런 지하철역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문화와 문명이 만나는, 상처받은 가난한 마음의 행로가 쉴 수 있는 그런 역(驛) 하나.
조향래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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