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거세공포다. 일찍이 '소변금지' 옆에 그려진 가위를 보며 가위눌린 수컷들, 많을 것이다. '튀어 나온 것'은 태생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외부의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튀어 나온 것'을 무기삼아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수컷의 원시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거세의 위험을 자초하는, 단세포적이고 즉물적인 견공의 '그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비밀스런 양지' 밀양(密陽). 시크릿 선샤인(Secret Sunshine) 에서 벌어진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고을 이름만큼이나 컬트적이다. 집단적인 결사조직, 은밀한 서약들, 수컷들 편에 선 폴리스, 그리고 희생된 약자…흡사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튀어 나온 것'을 함부로 놀리는 데는 '약'이 없다. 영화에서는 어떤 결말을 맺을까. 박철수 감독의 '에미'(1985년)의 홍여사(윤여정).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딸 나미(전혜성)과 단란하게 살고 있는 중년의 캐리어 우먼이다. 딸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어느 날 딸이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된다. 홍 여사는 사방팔방으로 찾아 나서지만 딸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그 시간 나미는 사창굴에 팔아 남겨지고,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 앞에 몸과 마음이 유린된다.
천신만고 끝에 딸을 찾았지만 이미 나미는 폐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엄마의 노력에도 나미는 끝내 자살해 버린다. 엄마는 이성을 잃어버린다. 티없이 맑은 나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증스런 악당을 추적해 하나 하나 응징한다.
그중 가장 나쁜 녀석에게 가해지는 응징이 인상적이다. 홍 여사는 그 남자를 욕조로 유인한다. 그리고는 시퍼런 칼로 '물건'을 잘라버린다. 수컷의 가장 큰 공포를 현실화시켜버린 것이다.
아벨 페라라 감독의 '복수의 립스틱'(1981년). 주인공 타나는 의상 디자이너다. 사장은 그녀에게 은근히 성적 접근을 해오고, 거리에도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로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하룻동안 두 번이나 강간을 당하게 된다. 그녀는 두 번째 강간범을 다리미로 때려죽인다. 우발적인 살인에 그녀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곧 냉정을 찾아 이 상황을 해결한다. 시체들을 토막내 뉴욕 뒷골목에 하나씩 버리는 것이다.
이 두 영화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 복수극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복수극을 벌일 이가 얼마나 있을까. 조디 포스터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피고인'을 보자. 어느 날 뒷골목 작은 술집에서 강간사건이 벌어진다. 남자 친구와 싸우고, 기분전환 차 들른 사라(조디 포스터)가 3명의 남자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와 법정은 냉담했다. 사라가 음주상태였고, 노골적인 춤으로 남자를 유혹했다는 것이다. 검사마저 변호인측 흥정을 받아 피의자들에게 단순 폭행 혐의만 적용한다. 사라는 이에 분노해 끝까지 법정 투쟁한다.
한국의 상황은 훨씬 나쁘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1년). 주부 정희(원미경)는 늦은 밤 귀갓길에 두 청년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본능적으로 저항하다 그 중 하나의 혀를 깨문다. 그러나 그녀는 그 청년에게 고소당하고, 급기야 구속된다.
재판과정에서 그녀는 완전한 외톨이가 된다. 검찰, 판사, 변호사에 의해 성적인 모욕을 받고, 어처구니없게 유죄판결까지 받는다.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주변의 질시를 견디다 항소를 결심한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그녀의 불행했던 과거가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남편과도 멀어진다. 자살까지 결심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무죄를 언도받는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상처는 치유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경찰조차 폭언을 서슴지 않았던 이번 밀양의 집단성폭행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가 한 치도 나아가지 않았다는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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