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조선 사회는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접하게 되면서, 큰 문화적 충격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크리스마스는 일상적인 절기이며, 연말연시와 맞물려 들뜬 기대와 설렘을 선사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소개된 영화 '엘프'는 문화적 충격으로 적응장애를 겪는 주인공이 가족의 사랑을 통해 극복해 가는 이야기다.
몸집은 작지만, 사람을 능가하는 재주와 지혜를 가진 북유럽 설화에 나오는 꼬마 요정 엘프는 숲이나 공기 속에 살면서 인간을 돕기도 하고, 가끔 심술궂은 짓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비슷하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라는 아기 버디는 성탄 전야에 찾아온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자루에 몰래 기어들어갔다가, 그대로 엘프 마을까지 가게 된다. 엘프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란 버디는 다른 엘프들보다 키가 3배나 더 커도 자신은 엘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세계의 어린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담당하는 엘프들은 동화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수많은 장난감과 유쾌한 놀이가 가득 찬 곳에 사는 버디의 정신연령은 일곱 살쯤으로 보인다.
서른 살이 되던 해, 버디는 우연히 자신이 엘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정체감의 혼란을 겪는다. 방황하던 버디는 진짜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뉴욕에 사는 친아버지는 일 중독자로, 가정을 등한시하는 '나쁜 아빠' 명단에 올라 있었다. 얼음 뗏목을 타고, 막대 사탕 숲을 지나 뉴욕에 도착한 버디는 아버지를 만나고, 이복동생과 새엄마와 인간생활을 시작한다.
도시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회전문을 수십 바퀴 돌며 장난을 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엘리베이터 버튼을 모두 눌러놓고 크리스마스트리 같다고 감탄한다. 스파게티에 시럽과 과자를 섞어서 손가락으로 집어 먹거나, 신호등을 무시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등 천방지축이다.
그러나 호기심이 주는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과 돈에 쫓겨 사는 냉철한 도시 뉴욕은 아름다운 엘프 마을과 너무나 달랐다. 아버지는 초록색 반코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를 신은 우스꽝스런 아들의 모습과 덜떨어진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아들과의 사랑보다는 당장 눈앞의 사업에 혈안이 된 아버지는 성가신 아들을 집에서 내쫓아버린다.
어릴 때부터 인간과는 접촉 없이 엘프들의 문화적 틀에서 자란 버디는 낯선 도시에서 적응장애에 빠진다. 얼굴도 모르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 하나로 멀고 먼 뉴욕까지 왔건만, 냉정한 아버지와 이질적인 문화는 버디에게 깊은 고립감과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버디는 엘프들을 버리고 떠나온 자신의 판단에 죄책감마저 느낀다. '파파 엘프'와 살던 곳이 그리워지고, 되돌아가고 싶어 향수병에 걸린다. 문화적 충격은 감정과 가치관의 혼란을 야기한다.
적응장애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 이브에 '파파 산타'가 순록 썰매를 타고 뉴욕으로 온다. 버디는 파파를 만난 기쁨으로 생기를 되찾는다. 한편 친아버지는 일과 아들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결국 혈연을 선택한다. 이로써 버디는 새로운 부자관계를 맺으며, 인간 세상에 정착하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등 우리 사회에는 문화적 충격으로 인한 적응장애를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연말에 들뜬 감정으로 자칫 소홀하기 쉬운 봉사와 박애 정신을 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남의 어려움을 나의 위안으로 삼는 소극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처세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요정 엘프는 따끔한 지혜를 선사한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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