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마음은 누구나 새롭다. 지난해가 아무리 어두웠어도 다가올 해에는 희망을 기대한다. 희망은 언제나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몫. 지난 한 해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교육계였지만 많은 이들이 새해 다시 희망을 기대한다. 오는 2월말 35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하는 정재성(62) 경북고 교사와 교직 생활 만 1년을 맞는 정주희(28'여) 달성고 교사의 속 깊은 대화에서 희망의 단단한 끈이 보였다.
◇나의 교단
"나도 정열만 갖고 덤벼들던 초년병 시절이 있었지. 풍부한 경험과 정보가 있어야 조화로운 교육이 가능하다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달았어. 친구들 모두 교장, 교감으로 끝내는데 20년 넘게 고3생들만 맡다 보니…. 허허. 그래도 보람은 내가 더 클 거야."
정재성 교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갖가지 감회가 비쳤다. 그래도 마주하는 정주희 교사의 표정은 새내기답게 씩씩하다. "제가 학생 때는 저런 걸 뭣 하러 가르쳐주나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 회사 생활에 이어 막상 교사가 되고 보니 배움에는 필요하지 않은 게 없더군요. 공부도 잘 가르치면서 배움의 쓸모까지 가르쳐야겠다는 각오가 생겼습니다."
노교사가 얼른 경계한다. "처음엔 가르칠수록 실력이 쑥쑥 느는 것 같았는데 점점 어려워져. 언제부턴가 일 년이 끝나고 나면 열심히 했다는 생각보다 부족하다는 후회만 남아."
새내기 교사의 표정이 어느새 엄숙해졌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충분히 살 만한 곳이란 걸 가르쳐주고 싶어요. 잘 할 때 박수를 쳐 주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흐뭇해진 노교사는 "난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될 것 같아. 지금 학교 틀은 옛틀을 덜 벗었고, 아이들은 마음만 자유로울 뿐 몸은 무질서하지. 이런 걸 조화시키는 교육에 힘을 보태고 싶어"라며 밝게 웃었다.
◇요즘 아이들
대화는 학생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예전 학생들은 교사 앞에서 예의와 겸손, 존경을 갖추려 했는데 요샌 그런 게 통 안 보여. 세대 차이라고 생각해도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장난스런 모습을 교실에서 보일 때는 쉽게 용납이 안 돼." 새내기 교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잘못을 나무라면 경험이 없다고 대들거나 따지는 애들이 더러 있어요. 함께 생활하면서 지켜야 할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조차 모르고 있는 게 안타깝죠."
이따금씩 "정말 선생 못 해 먹겠다"라는 이야기가 주위에서 들릴 땐 공감이 가기도 한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정재성 교사가 말을 잇는다. "교실에는 항상 여러 부류의 아이들이 모이지. 실력이 높고 낮고, 생각이 부정적이고 낙관적이고. 요즘 교사들은 한 쪽에 잘 치우치는데 모든 아이들을 잘 조절해서 이끌 수 있어야 실력 있는 교사라고 할 수 있지. 누구 하나 내 제자 아닌 아이가 있나."
정주희 교사는 "교단 붕괴라고 하도 말들이 많아서 우려했는데 막상 교단에 서고 보니 아이들은 그래도 순수하고 밝았어요"라며 동감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엄격함은 필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도 자기를 위해 화를 내고 나무라는 교사들의 진지함은 오히려 좋아하더군요."
◇가정과 사회가 도와야
최근 우리 교육이 처한 어려움을 이야기하자 두 사람은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낀다"라며 어깨를 떨어뜨렸다. 정재성 교사는 "지금은 교사 자신의 주장이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어떻게 하면 참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가르치는 데 전념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주희 교사도 "학교에서 흐릿하던 눈을 학원에서 빛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괴감을 가질 게 아니라 임용고사를 거친 당당한 교사라는 자부심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게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가정과 사회의 배려야말로 학교 교육에 가장 큰 자양분이라고 같은 목소리를 냈다. "사소한 일에도 아이들의 말만 듣고 항의전화를 하는 학부모들을 더러 봅니다. 학부모가 먼저 교사를 믿지 못하면 자녀도 학교를 멀리 하게 됩니다. 학부모들의 학력이나 직업 수준은 높아졌는데 너무 자기 자녀만 감싸다 보니 생기는 일이죠. 무엇이 진정 자녀를 위하는 길인지 깊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노교사의 바람에 새내기 교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들이 참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더 힘들게는 하지 않았으면 싶어요. 언론 매체와 사회 여론이 너무 교단을 벼랑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아요. 이러면 교사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두 교사는 어느새 3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발걸음을 같이 하고 있었다. "사회와 가정과 학교가 어깨를 걸고 함께 변하면서 서로에게 맞춰가야 합니다. 교육의 희망은 그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글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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