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을 공부해 보겠다고 지난 늦가을부터 이 능선 저 골짝 다녔다. 그러나 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은 매우 드물었다.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모를 허연 것이 덮고 있었다. 사진 취재에 실패하는 날이 많았다. 이번 겨울이 유난히 따뜻해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안개는 산만 덮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팔공산의 지리를 제대로 안내해 줄 책을 만나기가 불가능했다. 산의 흐름이 어디로 이어지고, 권역이 어디까지이며, 표지가 될만한 봉우리들은 무엇 무엇인가를 알기 힘들었다. 윤곽이 잡히지 않았다.
답답해 국가의 지리 정보를 책임지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들고 산에 올랐다. 그마저도 곳곳에서 오리무중이었다. 신뢰성 높아야 할 공공 보고서나 저술들의 서술도 서로 엇갈리기 일쑤였다. 앞선 서술을 너무 믿었었나, 아니면 팔공산을 가볍게 생각해 대충 베껴 때우려 했었나. 혼란들은 이 책에서 저 책으로 꼬리를 물고 뒤죽박죽 했다.
어디까지를 팔공산 권역으로 볼 것인지부터가 희미했다. 공식 보고서조차 그랬다. 4촌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영천의 화산(華山)까지 범위에 넣어 거기 있는 인각사를 언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코앞의 환성산 덩어리는 잊고 있었다.
팔공산 넓이의 경우, 대구시 조사보고서가 3천700만여 평(122㎢)이라 하자 다른 여러 책들이 이를 덥석 받아 기정사실화 해 놨다. 기자도 덩달아 이 말에 속아 지냈다. 하나, 알고 보니 그것은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면적만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말들 속에 듣기 싫잖은 것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었다. 공원구역 면적만으로도 속리산 국립공원 면적의 2배나 된다고 했다. 새 행정수도 후보지(2천160만평) 보다도 훨씬 클 정도로 팔공산이 대단한 산이라는 말도 들었다.
주능선의 길이를 경북도 조사 보고서는 29km라 했다. 그러나 대구시 조사 보고서는 20km라고 했다. 파스칼 백과사전은 16km라 했다. 시점이 다르고 종점이 다른 모양이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얼마라고 해야 할 것을 그냥 그렇게 때워 넘기고 있는 것이리라.
지도들의 표기는 혼란을 더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5만대 1 지도는 대구 무태의 서원연경 마을 뒷산을 '왕산'이라 표기했다. 그러나 같은 기관의 2만5천 지도는 지묘동 뒤 246m 산을 왕산이라 했다. 최근 발간돼 성가를 높인 '신산경표'라는 책도 그랬다. 지지(산경표)에서는 지묘동 뒷산, 지도(산경도)는 서원연경 마을 뒷산을 왕산이라 찍었다.
대구 도덕산에서 뻗어 나온 가지 줄기 중, 파계사 지구에서 지묘천골로 내려오다 봐 오른쪽에 우뚝 선 봉우리가 '응해산'이다. 하지만 국가 공식 2만5천 지도는 지묘천 건너 봉우리도 응해산이라 써 넣었다. 2만5천 지도가 중대동이라 표기한 파계사 지구 일대를 5만 지도는 '도남동'으로 적고 있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지명을 엉터리로 표기한 경우는 너무도 흔했다. 2만5천 지도는 동화사 양진암을 양전암(養殿庵)으로 한자까지 버젓이 바꿔 표기했다. 10만 지도는 신녕천을 신념천, 청통천을 정통천, 사창천을 사상천 혹은 사장천, 성전암은 성진암으로 썼다. 교정 잘못일 터.
한자를 잘못 읽어 사고를 낸 경우도 흔했다. 대구 백안동을 지나 와촌으로 가는 길의 왼편 산줄기 끝에 있는 명마산이 그랬다. 조마산으로 읽히더니 오마산으로까지 나가버린 경우도 있었다. 명(鳴)자가 조(鳥)로, 오(烏)로 왔다갔다해 버린 것이다. 부계(缶溪)는 악계(岳溪)로 예사롭게 읽혔다. 지묘천(智妙川)은 지사천(智沙川), 오계산(午鷄山)은 우계산(牛鷄山)이 돼 버리기도 했다.
산 높이 표기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팔공산 정상 봉우리가 5천 지도에서는 1192.8m였다가 2만5천 지도에서는 1192.9m로 높아졌다. 반면 파계봉 높이는 두 지도 사이에서 994m에서 991.2m로 낮아졌다. 팔공산 남면을 3등분하는 중심 줄기 중 하나인 거저산은 490m에서 520m까지 차가 났다.
혼란은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국가 공식 지도는 관봉(갓바위봉) 옆의 봉우리 하나가 '인봉'이라고 지목했다. 그쯤에서 흘러내린 줄기의 중간에 바위덩이를 이고 솟아 있는 봉우리는 '노족봉'이라 기재하고 있었다. 그걸 보더니 현지 주민들이 어리둥절해 했다. 지도가 노족봉이라 한 것이 인봉이라고 했다. 능선상의 그 봉우리에는 이름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대구시의 팔공산 자연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만든 안내도도 한 가지는 지도를 따라, 한 가지는 주민들의 말을 따라 안내하고 있었다.
능선 중 한 지점은 '능성재'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 적잖았다. 지명 조사를 한 적 있는 사람들은 '너패재'가 옳다고 했다. 보통사람이 보기에도 이상했던지, 재 넘어 절 동네에 있는 안내판은 '능선재'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몸소 바로 잡겠다고 나섰던 것일까. 더욱이 팔공산 기슭을 따라 대구에서 경산 와촌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도 '능성고개'라 불려 둘이 혼동되고 있었다. 어느 것이 '능성'이란 이름을 받는 게 더 타당할까?
팔공산 주봉의 이름을 놓고도 이견이 팽팽했다. 좌우에 동서봉을 거느려 '중봉'이라 불려 오다 '비로봉'으로 잡혀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비로봉도 아니라고 했다. '제왕봉'이라는 것이다. 국가 공식 지도는 주봉의 이름 표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신녕재'라 부르는 것의 옳은 이름은 '도마재'라고 전문가들이 말했다. 5천 지도도 이 이름을 택하고 있었다.
이런 혼란 정도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했다. 비중이 매우 높은데도 아예 이름을 얻지 못한 봉우리들이 적잖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엉뚱한 것으로 대신 호명하고 있었다. 공원관리사무소에서 위치 표시용으로 세운 팻말에 적힌 일련번호가 호칭에 동원되고 있었다. "몇 번 봉우리" 하는 식이 그것이었다. 엉덩이로 타고 내려가야 한다고 해서 "히프 봉우리"라고 불리는 것도 있었다. 더 유식한 사람들이래야 겨우 "몇 m 고지"라고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냥 놔 둬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사람 따라 마구잡이 임의로 부르다 보면 봉우리들의 이름이 정말 그렇게 굳어져 버릴 판. 평생을 팔공산에서 살아 왔다는 김태락씨는 "지명 바로 잡을 기회조차 점차 사라져 간다"고 발을 굴렀다. 옛부터 전해 오던 봉우리와 재의 이름을 기억하는 세대가 생을 마쳐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구시-경북도 주도로 하루 빨리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이 문제를 해소해야 합니다. 어렵고 복잡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판국에서는 '팔공산하'도 지명 표기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살얼음을 걷는 심정. 하지만 불가피한 부분에서는 과감히 새 표기를 도입하는 모험도 해 볼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설명 : 팔공산 주능선을 지상 5km 이상의 높이에서 동으로부터 서쪽 방향으로 바라 본 모습. 항공사진이다. 주능선 왼쪽 밑으로 골프장, 동화사 상가지구, 용수천 골, 지묘천 골, 남원리 골 등이 보인다. 칠곡 3지구까지 나타나 있다. 주능선 오른 쪽으로는 먼저 보이는 것이 오라지 못을 포함한 치산계곡인 듯하다. 이어서 나타난 작은 골은 백학, 가장 넓은 계곡은 부계골, 다음은 사창천 계곡일 터이다. 항공사진 제공 = GeoC&I / 송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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