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늦둥이 아빠 배진덕의 얼렁뚱땅 살림이야기

자식이 뭐기에...

어김없이 한 해가 가고 새해를 맞았습니다. 1월 1일 아침 해돋이를 보러 수십만의 인파가 동해안에 몰렸다는군요. 이들이 마음속으로 희망하는 1순위 소원은 아마 가족의 건강일 것입니다. 가족의 건강을 염원하는 마음에는 당연 가족 관계에서의 건강 또한 포함되리라 보입니다.

저의 경우 최근 둘째 애가 태어나 멀리 가족여행을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생활은 전쟁에 가깝습니다. 섣달 그믐날 "해는 어디에서도 볼 수 있다"고 자조하며 집 베란다에서 일출을 보는 대신 가족에게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놈과 갓 태어난 둘째 딸애와의 터울이 불과 21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22개월 된 첫째와 이제 6주 정도 된 둘째는 울어도 동시에 스테레오로 울고 한창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여야 할 큰 놈은 '땡깡'만 늘어 애비를 당혹하게 합니다.

섣달 그믐날 해돋이 가는 대신 가족 봉사도 할 겸 동네 마트에 갔습니다. 모처럼 아내에게 상냥한 미소를 보이며 부탁할 것 있으면 사다줄게 하면서 어색한 아첨까지 떨어가며 마트에 갔습니다. 늘 해왔듯이 큰 놈을 카트에 싣고 매장을 돌며 아내가 부탁한 것도 사고 제가 먹고 싶은 것도 몇 가지 샀습니다.

카트를 끌고 돌다보니 어물전에 간만에 방게가 있어 순간 머리 속에 방게로 찌개나 해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구나 방게가 마리 당 1천원밖에 하지 않더군요.

오는 길 내내 방게 찌개를 어떻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당장 무와 다시마, 마늘, 파 등을 넣고 방게 찌개를 만들었습니다. 찌개가 다 되어갈 무렵 내심 방게 뚜껑에다 밥을 비벼 먹으면 맛있겠다 생각하고 밥을 푸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때… 문제의 큰 놈이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방게 뚜껑은 고사하고 그 가는 방게 다리살까지 고스란히 발라주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담배 불을 끄다 잘못해 오른손 검지에 물집이 생기는 바람에 찌개 장물이 손가락에 배이니 엄청 아리고 아팠습니다. 그러나 내 자식 밥 한술 더 먹이려는 욕심이 제 식욕도, 장국물에 살을 애는 고통도 모두 잠재울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새해에는 아들 밥 먹일 때 살을 애는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담배 끊기가 소원이고, 끊기가 어려우면 안 피우기를 소망합니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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