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농업은 희망이다-(2)과수

수입산에 토종 흔들...고품질로 '맞장'

지난해 12월 외교통상부는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칠레와의 교역에서 공산품의 칠레수출은 크게 늘어난 반면 칠레 농산물의 수입 증가는 크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초 우려했던 국내 농업에 대한 피해가 미미해 FTA가 아직까지는 한국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 것으로 분석된다는 것.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적어도 과수농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목청을 드높인다.

FTA 이행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복숭아·시설 포도·키위 농가에 한해 정부가 폐원(廢園) 지원금을 주는 과수원 폐원 지원사업 신청 결과만 보더라도 우울한 농심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곳곳에서 목격돼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기술개발이 경쟁력

실제로 경북도가 지난해 과수원 폐원지원 신청을 받은 결과 복숭아의 경우 전체 도내 재배면적의 34%에 이르는 2천520ha가 신청했다.

또 시설포도(84ha), 키위(0.6ha)도 폐업하겠다는 농가가 잇따라 이들 세 품목 재배면적의 33%인 2천605ha가 폐업을 희망, 이 가운데 342ha가 과수일을 포기했다.

장기적으로 과수산업 기반이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질 만하다.

하지만 신품종과 신기술을 통한 고부가 가치 품목 생산으로 차별화에 성공한 농가도 있다.

1991년 경산에선 처음으로 시설포도(거봉 품종)를 시작한 김진수(56·남산면 전지리)씨는 2001년부터 청포도를 재배하면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한 전량은 다른 농가에 비해 ㎏당 5천 원 정도 비싼 가격에 대구·서울 백화점에서 '호산나 포도'라는 브랜드로 불티나게 팔린다.

2003년 경북도 농업명장에 선정되기도 한 김씨는 "양보다는 품질 향상에 주력해 시장 가격추세에 별로 영향을 받지않게 됐다"며 "폐원은 아직 생각조차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 단산리에서 20년 넘게 복숭아를 재배하고 있는 김정호(43)씨는 기술로 승부를 걸고 있다.

그동안 개발한 복숭아 재배기술은 수없이 많지만 그만의 비방은 바로 바닷물을 살포하는 것. 7년 전부터 바닷물을 희석해 열매 솎기가 끝난 시기부터 수확까지 4차례 뿌리고 있으며 껍질이 단단해지고 당도가 높아져 김씨가 생산한 복숭아는 전국 최고품질로 평가받고 있다.

■수출로 활로 개척

발 빠른 해외시장 개척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농가도 있다.

군위군 내 123가구가 참여하는 '군위 황금배 수출 영농조합법인'이 대표적 사례.

1996년 설립, 모두 58ha에서 황금배를 재배하는 이곳은 그동안 캐나다·동남아 시장에 수출하다 2003년 미국 첫 수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수출량은 136t, 3억2천만 원 상당. 수출 가격이 좋아 올해는 200t을 수출할 계획이다.

미국 수출은 가격은 제대로 받을 수 있지만 통관절차가 상당히 까다롭다.

해마다 미 농무성 검역관이 한 달씩 생산농가에 체류하며 재배지를 꼼꼼히 체크하고 국립식물검역소도 매달 한 번씩 병해충 유무 등을 확인한다.

미국 배 수출단지는 경북도내에서 유일하다.

공동선별, 공동출하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이곳은 또 수출하고 남은 배는 직접 지은 도라지·생강을 넣은 배즙으로 가공·출하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이 법인 윤점환(53) 대표는 "캐나다 시장은 저가 중국산이 이미 우위를 차지해 1999년부터 미국 수출을 추진했다"며 "최고 수준의 과일로 최고 가격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이 생존전략

친환경 농산물은 21C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식품 안전성과 환경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친환경농법을 도입하는 농가도 크게 늘고 있는 것.

상주시 모동면에서 승지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준혁(57)씨는 지난해 포도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유기농 재배 농산물은 3년 이상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그야말로 청정농산물을 의미하며 포도의 경우 전국에서 40여 농가뿐이다.

섬유회사 대표, 다국적 물류회사 한국지사장 등 잘나가는 기업인이던 그가 친환경 농업 전도사로 변신한 것은 1996년. 처음엔 그동안 꿈꾸던 전원생활을 위해 포도농사를 시작했지만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은 농업인의 사명이라는 생각에 처음부터 친환경농법만 고집했다.

현재 1천500평 규모의 비닐 하우스에서 생산하는 그의 유기농 포도는 일반 포도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 당 1만 원 수준을 받는다.

최씨는 "농민만의 이익만을 주장하거나 애국심에만 호소해선 살 길이 없다"며 "친환경 농산물 생산은 소비자와 농민이 다 함께 참여하는 우리 땅 살리기운동"이라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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