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준만 시론)어느 편이냐고 묻지마라

"엄정중립이라는 기회주의적 이념이 적어도 이러한 전 민족적 격동기에 있어서 존재할 수 없음을 우리는 확인한다." 중간이나 중도를 전혀 허용치 않는 이 주장은 1945년 10월 23일 서울에서 열린 전 조선 신문기자대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의 일부다. 해방정국의 좌우(左右) 대결구도에서 반드시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한다는 건 당시의 '상식'이었다. 중간파는 좌우 양쪽에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희귀한 존재였다.

6·25전쟁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낮에는 우(右), 밤에는 좌(左) 노릇을 할망정 중간은 좌우 양쪽으로부터 공격당해 목숨을 빼앗길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입지였다. 그래서 그때도 중간은 존재할 수 없었다. 독재정권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 대 반(反)민주'의 선명한 대결 구도에서 제3의 길은 존재하기 어려웠다.

세월은 가도 상처는 남는 법인가. 소설가 김훈씨는 그 상처를 이렇게 표현했다. "어느 편이냐고 묻지 마라. 그 질문은 너무 폭력적이다."

한국인의 특출한 '편 가르기' 솜씨는 격렬한 소용돌이로 점철된 현대사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세월은 흘러 해방정국도 6·25전쟁도 독재정권도 모두 졸업했건만, 정치는 여전히 중간이 없는 이분법적 극한대결로 치달으면서 전 사회를 그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관성 때문인가? 과거의 기억과 경험에서 탈출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너무 깊기 때문인가?

그런 점도 있겠지만, '승자 독식주의'와 '논공행상'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고찰해볼 필요가 있겠다. 자신의 사적(私的) 영역에서라도 중간에 서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실질적인 이익이건 심리적인 만족이건 중간파에겐 떡은커녕 떨어질 떡고물조차 없다. 반드시 어느 한쪽에 줄을 서야만 떡냄새라도 맡을 수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미래에 대한 투자 차원에서라도 어느 한쪽에 줄을 서야만 한다. 한국정치의 지독한 분열주의는 한국인의 심성 때문이 아니다. 바로 그런 '승자 독식주의'와 '논공행상' 때문이다.

'편 가르기'는 나쁜 건가? 그렇진 않다.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공 이슈에 대해 어느 편을 들기 마련이고 그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야 토론과 논쟁도 가능하다. 문제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편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지금 여야는 이념투쟁을 하고 있는 건가? 아니다.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 예컨대, 참여정부 제1의 과제였던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보자. 정부여당이 한나라당을 포용해 한나라당이 큰 생색을 낼 수 있게끔 참여시켰더라면 그 일은 얼마든지 성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든 걸 독식하고자 했다. 충청 표까지 독식해 2007년 대선까지 먹으려 했던 걸까. 정부여당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독선과 오만으로 대응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 움직임을 '제2의 탄핵사태'라고 윽박지르면서 내내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그 결과는 최악의 파탄이었다.

정부여당의 선의와 충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소신과 원칙도 믿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우위에 있는 게 바로 '승자 독식주의'라고 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거기에 참여정부의 탄생을 '새로운 역사발전 단계로의 진입'이라고 주장하는 자부심과 긍지가 더해져 다른 편을 도덕적으로 폄훼했다. 그 와중에서 참여정부의 주체는 개혁 열망에 몸을 떠는 순수한 젊은 민중의 에너지를 엉뚱한 방향으로 탕진하고 있다.

그로 인해 나타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을까봐 어느 편이냐고 묻는 질문을 폭력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건 매우 두렵게 생각해야 할 사실이다. 열정에 대한 환멸이 냉소의 바다로 나아가게 된다면 그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어느 여당 고위인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5천년 만에 찾아 왔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 해야 할 일은 야당과의 전쟁이 아니다. 참여정부에 뜨거운 애정을 갖고 있는 민중들로 하여금 여의도를 떠나 각자 선 자리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게끔 호소하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참여민주주의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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