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엎친 데 덮친 쌀값 하락

정부 보유분 벌써 적정량 2배 육박

"이대로 가다가는 쌀 산업은 물론 우리 농촌이 그대로 주저앉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그동안 잘 내리지 않던 쌀값이 최근 들어 내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만난 경북지역 농협 미곡처리장 관계자들이나 농업전문가, 농민단체 회원 농민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하나같이 "현 상태로 2, 3년이 지나면 국내 쌀 재고량은 포화상태에 봉착하고 국내 쌀 시장은 과잉공급으로 인한 심한 수급불균형으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어 특별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해 최근 나타난 쌀값 하락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실감케 했다.

농촌경제연구원 서진교 박사는 "최근 국내 쌀값이 수년 만에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현재 정부의 쌀 보유량이 적정 보유량 96만t(600만 섬)을 훨씬 뛰어 넘는 160만t(1천만 섬)을 넘고 과잉공급 현상이 빚어지면서 쌀값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서 박사는 특히 "올 가을 쌀 농사가 평년작만 이뤄내도 국내 쌀 재고량은 24만(150만 섬)∼32만t(200만 섬)이 늘고, 여기에다 2005년도 수입쌀까지 포함할 경우 총 56만t(350만 섬)의 추가 재고가 발생한다"라며 "쌀 재고 해소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국내 쌀 재고량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수입쌀이 이르면 6월부터 쌀 시장에 풀리면 국내 쌀시장은 일대 혼란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이미 경북지역 농협미곡종합처리장에서는 쌀값을 일제히 5% 정도 내린 가격에 시장에 내놓고 있으나 시장의 반응은 오히려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일반 미곡종합처리장과 소형 정미소들은 이보다 더 낮은 10%를 내리고, 앞다퉈 시장에 내놓는 바람에 전문가들은 당분간 쌀값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내 쌀 시장이 혼란의 조짐을 예고하는 것은 수입 쌀 시판이 현실화되면서 앞으로 쌀 시장의 전망이 어둡다고 판단한 쌀 수집상들이 거래를 포기하고 있기 때문.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 농산물 시장에서 형성된 소위 '가격의 천정'현상이다.

국내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면 값싼 수입농산물이 물 밀듯이 밀려들어 값비싼 국내 농산물의 가격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는 시장현상이 빚어진다.

올해는 수입 쌀 중 2만2천557t(15만6천645섬)이 국내 시장에 풀리지만, 내년에는 3만429t(23만9천90섬)이, 2010년에는 9만8천93t(68만1천896섬), 마지막 연도인 2014년에는 12만2천610t(85만1천458섬)으로 크게 늘어난다.

한편 쌀 값 하락과 재고 누적은 우리 국민의 쌀소비량이 매년 줄어드는 것도 적잖게 작용하고 있다.

농림부가 지난 3일 잠정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한 해 동안 우리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평균 81.8㎏으로 2003년 소비량에 비해 1.4㎏ 줄어들었고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 원년인 1995년의 소비량(106.5㎏)에 비해서는 무려 23%(24.7㎏)가 감소했다.

국민 쌀 소비 감소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쌀 값 하락 행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쌀값 하락은 곧바로 농가소득에도 영향을 미쳐 해마다 늘어나는 농가부채에 허덕이는 농민들을 더욱 옥죌 것이란 우려다.

농림자료에 따르면 국내 농가들의 농업소득의 절반 이상이 쌀 농사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반 이상 소득을 보전해주는 쌀값이 하락하면 자칫 쌀 농사 포기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는 곧 쌀 산업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의성군농민회 신택주 회장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쌀 재고량 중에서 47% 정도는 최소시장접근물량(MAM)으로 알고 있다"라며 "대북지원 등으로 재고난을 해소하고 농가들이 안심하고 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군위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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