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본처(本妻)이고 연극은 정부(情婦)이다.
"라고 말한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홉은 1884년 모스크바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학도였다.
그는 44세에 장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의사와 작가라는 두 가지 삶을 모두 정직하게 살아왔던 체홉은 이미 16세 때 아버지가 파산한 이후 생계수단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소설 '6호 병동'은 한 의사가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사회의 온갖 악습 속에 짓눌려 지내던 시골 자선병원의 의사가 끝내 현실을 도피하다가 결국 정신병자로 취급되어 폐쇄병동에 갇혀 비참하게 죽어가는 과정이 줄거리로 되어 있다.
체홉은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암담한 현실을 '6호 병동'을 통하여 항변하고 있다.
그는 주인공의 입을 통하여 의학이 과연 한 인간의 고통이나 사회의 악습을 치유하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의 불만과 의심을 토로하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 볼리비아의 한 정글에서 총살 당하여 사망한 20세기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생애를 덧붙인다.
총살된 뒤 증거물로 그의 두 손은 잘려져 카스트로에게 보내졌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알레르기 전문의사이면서도 두살 때 얻은 알레르기 기관지 천식으로 평생 고생하였다.
그의 모습은 별 달린 베레모, 턱수염과 시가를 문 모습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는 아직도 20,30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어 그의 사진이 인쇄된 '티셔츠'를 즐겨 입고 다닐 정도다.
그는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를 도와 단지 수십 명의 게릴라를 이끌고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린 전설 속의 혁명가가 되었다.
그는 왜 장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접고 의사가 된 지 2달 만에 가운을 벗어던지고 험난한 길로 들어서 민중을 위한 혁명가가 되었을까. 또한 쿠바 혁명으로 이미 많은 것을 얻은 그가 왜 아무것도 없는 볼리비아의 혁명에 다시 가담하여 결국 총살 당하고 말았는가. 그도 역시 체홉처럼 단순히 환자 진료만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치유할 수 없음을 깨닫고 '혁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였을까.
체홉과 게바라는 같은 의사 출신이면서 병든 사회를 고치고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방법에 있어서는 퍽 대조적이다.
체홉은 문학을 통한 내과적인 처방을 사용하였다면 게바라는 혁명이라는 외과적 근치수술 방법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병든 부분과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체홉'과 '게바라'의 방법 가운데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보수니 진보니 하고 서로 갈등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 과정에서 더러는 딱지 앉아 아물어 가는 상처를 건드려 덧나게도 만들었고 구호만 요란하였지 얻은 것은 별로 없는 우를 범하면서 오히려 우리의 고통을 가중시켜온 면이 있다.
프랑스 대혁명, 볼셰비키 혁명, 문화혁명, 동학혁명 등 역사를 두고 보면 대개 미완성 또는 실패로 끝나고 있음을 볼 때 아무래도 우리는 '체홉'식 내과적 처방을 기대하고 싶다.
혁명은 화려하지만 외롭고 때론 피를 흘려야 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은 매우 의학적이고 의학과 닮아 있다.
문학과 의학은 인간의 고통을 다룬다는 점에서 같은 출발을 하고 있으며, 인간의 고통을 치유한다는 면에서 지향하는 바가 같다.
인간의 모든 고통이 문학의 영역이 되는 것처럼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 모두가 의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유명 의과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사 생활을 버리고 정치가, 문학가, 예술가의 길을 택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윤성도· 시인·계명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산부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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