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실버 머니'

우리나라는 가족 윤리의 모범을 보인 '도덕 국가'였다. 부모를 공경하고 봉양하는 '효(孝)'가 중요한 덕목이었다. '효'라는 인본주의의 이 덕목은 자랑스러운 전통이었으며, 외국 사람들이 이 때문에 '경의'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화'도시화'핵가족화 등의 사회 변화 속에서 그 아름다운 전통은 퇴색하고 있다. 정과 성을 다해 늙고 병든 부모를 봉양하던 '효도'는 이제 '전설'이 돼 가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반면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예전처럼 '인사치레'의 말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 돼 간다.

◇ '돈이 떨어지면 기운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돈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한 통계에 따르면, 건강 문제(27.4%), 외로움(16.9%), 소일거리 없음(6.1%)도 만만찮지만 경제 문제는 36.8%나 됐다. 하지만 자식에게 기대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먼 훗날을 위한 '노테크'에 신경을 쓰고, 돈을 모으는 분위기다.

◇ 요즘 금융권의 '실버 머니' 잡기 발걸음이 분주해진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로 달리면서 이미 퇴직했거나 가까운 미래에 퇴직금과 연금을 손에 쥐게 될 실버 세대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움직임들인 셈이다. 한국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금융자산(1천41조 원) 중 55세 이상 남녀가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이 600조 원 정도라니 그럴 만도 하다.

◇ 제일은행은 홈페이지에 돋보기 너머 보이듯이 글자를 키운 '이지 뱅킹(Easy Banking)' 코너를 만들었다. 조흥은행은 장수(長壽) 지원 봉사인 '헬스케어 서비스'를 도입했으며, 삼성생명'교보생명 등은 보험 일정액 이상 가입한 고객에게 건강진단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한국상호저축은행은 '어르신 고객'을 위한 좌석형 안마기와 혈압 측정기 설치를, AIG손해보험은 50~75세 전용 보험을 두고 있기도 하다.

◇ 우리나라도 20여 년 뒤에는 노인 인구가 14%를 넘는 '고령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노인 문제를 '효'라는 미명 아래 개인에게만 부담 지울 수 없으며, 국가가 모두 책임질 수도 없는 형편이다. 다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실버 머니'가 600조 원에 이르고, 아름다운 실버를 위한 새로운 움직임들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이에 발빠르게 그 주머니를 넘보는 '웃지 못할' 세태인 것 같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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