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과 영천을 잇는 국도 35호선 노귀재 고갯길이 곧 추억 속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동절기 결빙·강설에 따른 교통 불편 해소와 청송지역 관광개발 촉진을 위해 지난 2003년 착공한 터널 공사가 오는 2008년이면 마무리되기 때문. 터널이 뚫리면 고갯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터널은 총 사업비 532억 원을 들여 총연장 0.9㎞, 도로폭 20m, 4차로 양방향으로 건설되며 현재 2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속칭 노고재 또는 노구재라고도 불리는 노귀재(해발 502m)는 청송군 현서면 사촌리와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를 잇는 고갯마루다.
청송군이 펴낸 책자 '청송의 향기'에는 노귀재란 명칭은 임진왜란 때 왜구가 붙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숱한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노귀재에 터널이 뚫리는 것을 아쉬운 눈길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 중에는 황병우(74·청송군 부남면)씨도 있다.
3선 국회의원을 지낸 황씨는 1985년 비포장길이던 노귀재 포장 공사를 위해 당시 서슬 퍼런 군사정권 아래서 '맨발 행군'을 벌여 유명해진 인물
"건설부에 도로 확장·포장공사를 수십 차례에 걸쳐 건의했지만 찾아갈 때마다 장관이 10년만 기다려 달라고 해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맨발로 노귀재를 걷는 방법을 택하게 됐지요."
황씨는 "당시 청송~현서면 노귀재간 도로는 군내 6개 읍·면 주민들에게는 생명선과 같은 길이었다"고 술회했다
그의 맨발 행군은 85년 6월26일 오전 9시쯤 노귀재 정상에서 시작됐다.
국회의원인 황씨가 맨발로 자갈길을 걷기 시작하자 200여 명의 군민들이 뒤를 따랐고, 그 수는 점점 불어났다.
그러나 행군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출발 후 2시간 만에 4㎞를 걸어 청송군 현서면 사촌마을에 도착했지만 경찰병력 120여 명이 가로막았다.
결국 황씨는 경북경찰청장의 지프에 강제로 태워졌고 5일간 52㎞를 행진하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황씨와 군민들의 이날 행군은 노귀재 도로 확장·포장 공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지역 푸대접에 불만이 컸던 청송지역 주민들의 여론이 집결했고, 당시 건설부 도로국장이 직접 청송으로 내려와 도로 확장·포장을 약속했다.
결국 행군 이듬해인 1986년부터 청송~노귀재 도로 확장·포장공사가 시작돼 1990년에는 52㎞ 구간이 말끔히 포장되었다.
윤경희 경북도의원은 "노귀재 정상에서 바라보는 보현산의 사계는 한폭의 동양화 같아 매년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어 터널이 뚫리더라도 당국에서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95년쯤 4억5천여만 원을 들여 청송군으로부터 노귀재 휴게소를 인수한 현서농협 측은 "터널이 뚫리면 노귀재 고갯길을 이용하는 차량이 줄어들게 돼 아쉽다"며 "군에서 표지석을 세우고 진입도로를 개설하는 등 활용 방안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청송·김경돈기자 kdon@imaeil.com사진: 1985년 6월26일 맨발의 행군을 하는 황병우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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